읽고 싶은 시 743

인생의 선물 / 사무엘 울만

나는 가시나무가 없는 길을 찾지 않는다 슬픔이 사라지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해가 비치는 날만 찾지도 않는다 여름 바다에 가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햇빛 비치는 영원한 낮만으로는 대지의 초록은 시들고 만다 눈물이 없으면 세월 속에 마음은 희망의 봉우리를 닫는다 인생의 어떤 곳이라도 정신을 차려 갈고 일군다면 풍요한 수확을 가져다주는 것이 손이 미치는 곳에 많이 있다

읽고 싶은 시 2022.07.17

무월*에서 / 전 숙

첩첩한 달빛과 눈 맞추고 귀 맞추어 사랑이라는, 그 가늠할 수 없는 우주가 열리면 대숲도 귀가 열려 하르르하르르 돌담과 속삭이지 등줄기 서늘할 때 무작정 달려가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손길에 등을 맡기면 고향집 구들처럼 훈김이 돌지 허기진 마음을 쩍쩍 벌리면 사랑이라는 먹이가 쑥쑥 들어오는 무월이라는 예쁜 이름 * 담양의 마을 이름

읽고 싶은 시 2022.07.13

내가 알아보잖아요 / 전 숙

날마다 같은 장소에서 내리는 할아버지 버스 기사님이 여쭙는다 어르신, 날마다 어디를 그렇게 가세요? 저 앞에 있는 요양원에 갑니다 거기 누가 계세요? 우리 마누라가 있지요 어르신을 알아보세요? 아니요 알아보지도 못하는데 날마다 뭐 하러 가세요? 내가 알아보잖아요 생이란 멍에 같은 십자가를 지고 가는 여정 자신에게 지워진 십자가의 문장을 어떻게 독서하느냐에 생의 빛깔이 달라진다 운 좋게도 그날 아침 버스에서 세상에서 가장 뭉클한 십자가를 만났다.

읽고 싶은 시 2022.07.01

명옥헌* 피에타 / 전 숙

삼복더위에 염화를 풀겠다고 작정한 듯 여름이 폭발한다 온몸이 타오르는 그 열기에 누구라도 델까 봐 맨몸으로 여름의 파편을 다 받아낸 명옥헌 백일홍 생살에 박힌 파편이 꽃으로 핀다 숭얼숭얼 상처가 피어있다 옥처럼 울먹이는 백일홍의 상처 백일을 울어야 상처가 나을 것이다 꽃나무 성인을 호수 성모가 끌어안고 있다 * 담양군 고서면의 정자

읽고 싶은 시 2022.06.27

청 춘 / 사무엘 울만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 가짐을 뜻하나니 장미빛 볼, 붉은 입술 부드러운 무릎이 아니라 풍부한 상상력과 왕성한 감수성과 의지력 그리고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신선함이라네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 그 탁월한 정신력을 뜻하나니 때로는 스무 살 청년보다 예순 살 노인이 더 청춘일 수 있네 누구나 세월 만으로 늙어가지 않고 이상을 잃어버릴 때 늙어간다네 세월은 피부의 주름을 늘리지만 열정을 가진 마음을 시들게 하진 못하지 근심과 두려움, 자신감을 잃는 것이 우리 기백을 죽이고 마음을 시들게 하네 그대가 젊어 있는 한 예순이건 열여섯이건 가슴 속에는 경이로움을 향한 동경과 아이처럼 왕성한 탐구심과 인생에서 기쁨을 얻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 법 그대와 나의..

읽고 싶은 시 2022.06.19

6 월 / 오세영

바람은 봄향기의 길이고 꽃향기는 그리움의 길인데 내겐 길이 없습니다 밤꽃이 저렇게 무시로 향기를 쏟는 날 나는 숲속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님의 체취에 그만 정신이 아득해졌기 때문입니다 강물은 꽃잎의 길이고 꽃잎은 기다림의 길인데 네겐 길이 없습니다 개구리가 저렇게 푸른 울음 우는 밤 나는 들녘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님의 말씀에 그만 정신이 황홀해졌기 때문입니다 숲은 숲더러 길이라 하고 돌은 돌더러 길이라하는데 눈먼 나는 아아 어디로 가야 하나요 녹음도 지치면 타오르는 불길인 것을 숨막힐 듯 숨막힐 듯 푸른 연기 헤치고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강물은 강물로 흐르는데 바람은 바람으로 흐르는데...

읽고 싶은 시 2022.06.13

그렇게 사랑할 수 있다면 / W. 데인

나를 버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사랑하고 이별하는 순간마다 그대를 버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상처받고 외로워하던 순간마다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답니다 그렇게 사랑할 수 있다면 나를 버리는 것에 용기를 낼 수 있다면 잘려나간 가지 위에서 새순이 돋아나듯 우리의 사랑도 그렇게 아픔 속에서 다시 돋아날 수 있다면 나를 버려 그대가 다시 태어나고 그대가 조금만 더 자신을 죽임으로 내가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읽고 싶은 시 2022.06.08

아버지의 나이 / 정호승

나는 이제 나무에 기댈줄 알게 되었다나무에 기대여 흐느껴 울 줄 알게 되었다나무의 그림자 속으로 천천히 걸어들어가나무의 그림자가 될 줄 알게 되었다아버지가 왜 나무 그늘을 찾아지게를 내려놓고 물끄러미나를 쳐다보셨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 강물을 따라 흐를 줄도 알게 되었다강물을 따라 흘러가다가절벽을 휘감아 돌때가가장 찬란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해질 무렵 아버지가 왜 강가에서지게를 내려놓고 종아리를 씻고 돌아와내 이름을 한 번씩 불러보셨는지 알게 되었다

읽고 싶은 시 2022.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