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수상 29

“성모 마리아가 신이라도 되냐고요” / 백성호의 현문우답

# 풍경 1 : 가톨릭 성당에 들어서면 성모 마리아상이 있습니다. 교인들은 마리아상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합니다. 개신교 일각에선 그걸 두고“왜 마리아를 믿는가? 마리아가 신인가? 그건 우상이다. 왜 우상숭배를 하는가?”라고 몰아붙이기도 합니다. 가톨릭은 반박합니다. “그건 오해다. 마리아를 신으로 믿는 게 아니다. 다만 주님의 어머니를 공경하는 것이다. 우리가 숭배하는 것은 삼위일체 하느님뿐이다.” 그래도 공박은 계속됩니다. “그럼 공경만 해야지, 왜 기도를 하나? 마리아상 앞에서 기도를 하지 않나? 그게 우상숭배가 아니고 뭔가?” 가톨릭은 다시 반박합니다. “처녀의 몸으로 잉태한 마리아는 하느님의 뜻에 순명했다. 그래서 성모님께 대신 기도를 해달라고 청하는 거다. 가톨릭에선 그걸 가리켜‘전구(轉..

노아의 방주를 타는 법 / 백성호의 현문우답

# 풍경 1 : 영화 '노아'를 봤습니다. 대홍수에서 살아남은 노아의 방주 이야기입니다. 구약성경의 스토리를 상업적으로 각색한 영화더군요. 성경 이야기의 역사적 재현을 기대한 기독교인 관객이라면 실망감이 컸을 겁니다. 영화는 선과 악의 경직된 이분법적 시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래도 군데군데 가슴에 꽂히는 대사가 있었습니다. 가령 "세상은 뜨는 것과 가라앉은 것으로 나뉜다"는 대목입니다. 영화의 시각적 클라이맥스는 대홍수 장면입니다. 폭우가 퍼붓고, 홍수가 나고, 세상이 몽땅 물속에 잠깁니다. 영화관을 나서면서 생각했습니다. 정말 물에 뜨는 건 무엇이고, 물에 가라앉는 건 무엇일까. # 풍경 2 : 예수는 물위를 걸었습니다. 그걸 본 베드로는 배에서 내려왔습니다. 예수를 따라 물위를 걷기 시작합..

언령(言靈) / 구 상

언령(言靈)이라는 한문 숙어의 그 어원을 상고(詳考)치는 못했으나 우리는 무속적 차원에서만 쓰고 있는 성 싶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현대언어학 특히 시어의 고찰에 자주 쓰이는 말로서 즉 말이 내제한다고 믿어지는 신령한 힘을 뜻합니다. 가령 오늘의 어느 시인이 찬란한 언어와 능란한 솜씨로 만해 한용운이나 필리핀의 호세리살의 시보다 훨씬 애국적인 시를 만들어 내었다 해도, 내실이 없이는 그 말은 마치 무정란(無精卵)과 같아서 독자들에게 감동이라는 새 생명을 부화시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말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신령한 면이 있어서 에 든지 불교에서 말하는 열 가지 죄악 중의 하나인 즉 비단 같은 말이 큰 죄악으로 꼽히는 것은 다 언령이 결한 말을 뜻..

두려워하지 말자 / 법 정

산중에 외떨어져 살면서 내가 흔히 받는 질문 중 하나는, 혼자서 외진 곳에 살면 무섭지 않느냐다. 무서워하면 홀로 살 수 없다. 무서움의 실체란 무엇인가.무서움의 대상보다는 마음의 작용에 의해 무서움이 일어난다. 밤이나 낮이나 똑같은 산중 환경, 다만 조명상태가 밝았다 어두웠다 할 뿐인데 마음에 그림자가 생기면 무서움을 느낀다. 자연을 정복의 대상이나 수단으로 여기지 않고 살아있는 생명체로 대한다면 그 품은 한없이 너그럽다. 무섭기는 갑자기 돌변하는 인간의 도시다. 예측할 수 없는 돌발적인 사건 사고가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두려움의 실체 보다는 두려워하는 그 마음이 상황을 더욱 나쁘게 만든다. 두려움은 몸의 근육을 마비시키고 혈액순환에도 영향을 미쳐 정상적이고 건강한 생명의 활동을 저해..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 백성호

중국의 백장 선사는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도 않는다 (一日不作 一日不食)는 말로 유명합니다. 하루는 젊은 스님이 찾아와 물었습니다. 스님, 부처는 어디에 있습니까? 이놈아, 너는 소를 타고서 소를 찾고 있느냐. 만약 소를 찾으면 그 다음은 어찌할까요? 소를 탔으면 갈 길을 가야지, 왜 머뭇거리느냐. 그럼 그 소를 어떻게 간직할까요? 소가 남의 밭에 들어가지 않도록 해라. 그게 목동이 할 일이다. 이 말을 들은 젊은 스님은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러더니 백장선사에게 절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소리치며 법당을 나갔습니다. 내 소가 백장 밭에 들어간다! 내 소가 백장 밭에 들어간다! 불교에선 깨달음을 소에 비유합니다. 사찰 법당의 벽에도 동자가 소를 찾는 구도의 과정을 담은 십우도(十牛圖)를 그려..

십자가를 등에 지고 가지 말고 품에 안고 가라 / 정호승

이 세상에 십자가를 지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누구나 크고 작은 자기만의 십자가를 하나씩은 지고 살아갑니다. “저 녀석은 내가 죽을 때까지 지고 가야할 십자가야.” 이렇게 말하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부모에게는 자식이 십자가입니다. “저이는 내 십자가야,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없어.” 이렇게 말하는 아내에게는 남편이 십자가입니다. 아니면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라고 하면 사랑보다 고통을 먼저 떠올립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으나 죽을 때까지 감당할 수밖에 없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대로 버리고 싶으나 결코 버릴 수 없는 고통의 덩어리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건 아마 자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청년 예수의 고통을 떠올리기 때문일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 정호승

이 말은 1997년에 낸 제 시집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많은 오해가 뒤따랐던 제목이기도 하고요. 시가 역설과 반어의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어떤 이는 "이 시집은 사랑하는 사람한테는 못 사주겠네" 하고 말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하고 말하기도 하고, 또 가까운 벗들은 술자리에서 "자, 술 먹다가 죽어버리자!"하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시가 역설과 반어의 방법으로 쓰인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우스운 말이지만, 정말 사랑하다가 죽어버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죽음에 이르도록 진정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시의 내면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있는 가슴을 지닌 사람이라면 바로 이해되는 말로 사랑의 깊이와 무개를, 그 가치와 의미를 다시 한번 ..

말씀이 육신이 된다고 ? / 백성호의 현문우답

# 풍경 1 : 당나라 재상 배휴(裴休)가 황벽(黃檗) 선사를 찾았습니다. 두 사람은 친분이 두터웠죠. 배휴는 작은 금불상을 하나 꺼냈습니다. 그리고 황벽 선사에게 부탁했죠. “이 부처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선사는 느닷없이 “배~휴!”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배휴는 “예!”하고 대답했습니다. 황벽 선사는 더 말이 없었습니다. 배휴는 선사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죠. 선사가 입을 땠습니다. “이제 됐습니까? 재상” 배휴는 고개만 갸우뚱했죠. 그러자 선사가 말했습니다. “지금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습니까?” 그 말을 듣고 배휴는 활짝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선사에게 큰절을 올렸다고 합니다. # 풍경 2 : 그리스의 밧모섬에 간 적이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유배를 당했던 섬이죠. 90..

불완전한 내 안이 '땅끝’ 아닐까? / 백성호의 현문우답

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너희는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되리라 (사도행전:1,8)’ 개신교에서‘나의 증인이 된다’는 말은‘복음을 전한다’는 뜻으로 풀이 되죠. 이 말은 해외 선교사들이 두고두고 가슴에 새기는 구절입니다. 그래서 이슬람권이든, 아프리카 오지든 몸을 사리지 않고 달려갑니다. 최근에 만난 한 목사님은“선교사들에게 이 구절은 선교에 관한 절대적 지침”이라고 설명하더군요. 그런데 저는 궁굼합니다.‘땅끝’의 의미가 과연 뭘까. 사도행전을 쓸 때는 어땠을까. 당시에는 땅이 어떻게 생겼다고 봤을까. 네모였을까. 아니면 동그라미였을까. 그리고 당시 사람들이 봤던‘땅끝’은 과연 어느 나라. 어느 지방쯤이었을까. 하느님은 세상을 창조하실 때 완전하게 만드셨죠. 무엇하나 보탤 것도, 무엇하나 ..

경전 속 진리가 삶이 되려면 / 백성호의 현문우답

# 풍경 1 : 발명왕 에디슨의 유년은 참 엉뚱했죠. 아 글쎄, 직접 알을 까겠다고 거위 알을 품었으니까요. 또 털에서 불꽃을 일으킨다며 고양이 두 마리를 마구 비벼대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에디슨이 나중에 백열전구와 축음기 등 숱한 발명품을 만들어냈죠. 에디슨의 장례식날 밤, 미국인은 모든 전깃불을 1분간 끄면서 위대한 발명가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 풍경 2 : 마리 퀴리는 1883년 폴란드 바르샤바 국립여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죠. 그런데 대학진학은 상상도 못할 처지였어요. 왜냐고요? 당시 폴란드에는 여자를 받아주는 대학이 없었거든요. 마리는 절망했죠. 의사를 꿈꾸던 언니 브로냐도 마찬가지였어요. 결국 둘은 작전을 짰습니다. 프랑스로 가기로 작정을 했죠. 당시 파리의 대학에는 여자도 입학할 수 있었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