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시 752

3월로 건너가는 길목에서 / 박목월

2월에서3월로 건너가는 바람결에는싱그러운 미나리 냄새가 풍긴다해외로 나간 친구의체온이 느껴진다​참으로2월에서 3월로 건너가는골목길에는손만 대면 모든 사업이다 이루어질 것만 같다​동, 서, 남,북으로틔어 있는 골목마다수국색 공기가 술렁거리고뜻하지 않게 반가운 친구를다음 골목에서만날 것만 같다​나도 모르게 약간걸음걸이가 빨라지는 어제 오늘어디서나분홍빛 발을 아장거리며내 앞을 걸어가는비둘기를 만나게 된다​ㅡ무슨 일을 하고 싶다ㅡ엄청나고도 착한 일을 하고 싶다ㅡ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2월에서3월로 건너가는 바람 속에는끊임없이 종소리가 울려오고나의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아난다희고도 큼직한 날개가양 겨드랑이에 한 개씩 돋아난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 이해인

하얀 눈 밑에서도 푸른 보리가 자라듯 삶의 온갖 아픔 속에서도 내 마음엔 조금씩 푸른 보리가 자라고 있었구나 꽃을 피우고 싶어 온몸이 가려운 매화 가지에도 아침부터 우리집 뜰 안을 서성이는 까치의 가벼운 발결움과 긴 꼬리에도 봄이 움직이고 있구나 아직 잔설이 녹지 않은 내 마음의 바위 틈에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일어서는 봄과 함께 내가 일어서는 봄 아침 내가 사는 세상과 내가 보는 사람들이 모두 새롭고 소중하여 고마움의 꽃망울이 터지는 봄 봄은 겨울에도 숨어서 나를 키우고 있었구나

읽고 싶은 시 2025.02.25

나는 알고 또한 믿고 있다 / 구 상​

​이 밑도 끝도 없는욕망과 갈증의 수렁에서빠져나올 수 없음을나는 알고 있다.​이 밑도 끝도 없는고뇌와 고통의 멍에에서벗어날 수 없음을나는 알고 있다.​이 밑도 끝도 없는불안과 허망의 잔을피할 수 없음을나는 알고 있다.​그러나 나는 또한 믿고 있다.​이 욕망과 고통의 허망 속에인간 구원의 신령한 손길이감추어져 있음을,그리고 내가 그 어느 날그 꿈의 동산 속에 들어영원한 안식을 누릴 것을​나는 또한 믿고 있다.

읽고 싶은 시 2025.02.24

봄길 / 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길이 끝나는 곳에서도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사랑으로 남아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읽고 싶은 시 2025.02.17

개안(開眼) / 박목월

나이 60에 겨우꽃을 꽃으로 볼 수 있는눈이 열렸다.神이 지으신 오묘한그것을 그것으로볼 수 있는흐리지 않은 눈어설픈 나의 주관적인 감정으로채색하지 않고있는 그대로의 꽃불꽃을 불꽃으로 볼 수 있는눈이 열렸다. 세상은 너무나 아름답고충만하고 풍부하다.神이 지으신 있는 그것을 그대로 볼 수 있는至福한 눈이제 내가 무엇을 노래하랴.神의 옆자리로 살며시다가가아름답습니다.감탄할 뿐神이 빚은 술잔에축배의 술을 따를 뿐.

읽고 싶은 시 2025.02.17

성숙한 사랑을 위해 / 가토 다이조

​노력하지 않고서 사랑받을 수는 있어도노력하지 않고서 사랑할 수는 없네.​사랑한다는 것은 삶의 무거운 짐을 정면에서 떠맡는 것.​무엇인가에 의지하고 싶다,무엇인가의 보호를 받고 싶다,무엇인가를 붙잡고 싶다,이러한 것들을 하나하나 내던져 버리고 홀로 굳건히 서기 위한 노력.​자기 중심으로부터 벗어나지 않고선 그 누군가를 사랑할 수가 없네.​사랑하려고 애쓰는 노력은자기 중심적 생각과 행동으로 부터 한 걸음씩 벗어나는 일.역경에 무너지지 않고고통에 쓰러지지 않고나의 슬픔을 뛰어넘어 환한 웃음으로 그를 마주할 수 있어야 하는 것.그리하여 그 사랑으로 더욱더 성숙해지는 일.​노력하지 않고서 사랑받을 수는 있어도 노력하지 않고서 사랑할 수는 없네.

읽고 싶은 시 2025.02.12

눈 / 오세영

​​순결한 자만이 자신을 낮출 수 있다자신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은 남을 받아들인다는 것인간은 누구나 가장 낮은 곳에 설 때 사랑을 안다살얼음 에는 겨울추위에 지친 인간은 제각기 자신만의 귀갓길을 서두르는데 왜 눈은 하얗게 하얗게 내려야만 하는가하얗게 하얗게 혼신의 힘을 기울여 바닥을 향해 투신하는 눈, 눈은 낮은 곳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녹을 줄을 안다나와 남이 한데 어울려 졸졸졸 흐르는 겨울물 소리언 마음이 녹은 자만이 사랑을 안다

읽고 싶은 시 2025.02.11

폭설, 그 이튿날 / 안도현

눈이 와서,대숲은 모처럼 누었다​대숲은 아주 천천히눈이 깔라놓은 구들장 속으로 허리를 들이밀었을 것이다​아침해가 떠올라도 자는 척,게으런 척,꿈쩍도 하지 않는 것은​밤새 발이 곱은 참새들발가락에 얼음이 다 풀리지 않았기 때문​참새들이 재재거리며 대숲을 빠져나간 뒤에대숲은 눈을 툭툭 털고일순간, 벌떡 일어날 것이다

읽고 싶은 시 2025.02.11

봄 / 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어디 뻘밭 구석이거나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흔들어 깨우면 눈 비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읽고 싶은 시 2025.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