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 / 정호승 내가 아직 강변에 사는 것은 죽은 새들이 내 발밑에서 물결치기 때문이다 내가 아직도 아무도 살지 않는 강변에 사는 것은 실패도 생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강한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긴 자가 강한 것이라는 죽은 새들의 정다운 웃음소리를 들으며 온종일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나의 삶이 진정 괴로운 것은 분노를 삭일 수 없다는 일이었나니 내가 아직도 바람 부는 강변에 사는 것은 죽은 새들이 날아간 하늘에 햇살이 빛나기 때문이다 읽고 싶은 시 2013.12.16
학의천 / 이현실 소소히 이는 바람에 등 떠밀려 가만가만 흘러가는 잔물결 냇물은 바람에게 말없이 등을 내민다 천 마리의 학, 그 울음을 업고 유유히 흐르던 물가에 앉으니 아코디언처럼 접히고 펴지는 오후 겹겹이 흔들리며 다가오는 저 낯익은 물주름 어스름 내리는 물이랑 속으로 달려가 무너질 듯 안겨들면 구순의 아버지 노을빛에 잠겨 봄밤을 흐르고 있다 *안양 인덕원의 냇가. 천 마리 학이 내려와 살았다는 전설이 깃든 곳. 읽고 싶은 시 2013.11.26
무등의 노래 / 고은 한밤중 고개 숙인 물의 머리를 들어서 듣거라. 무등이 무등만한 소리로 쾅,쾅,쾅, 부르짖는도다. 한밤중 곯아떨어진 흙들아 그 소리에 깨어나 거기 묻힌 주야장천(晝夜長川)의 백골(白骨)도 듣거라. 어느 것 하나인들 우리 포한(抱恨) 우리 억수(億水) 비바람 한밤중 고개 숙인 물의 머리를 들어서 너도 나도 비바람으로 몰려가 밤새도록 우리 동편제(東便制) 무등 함성(喊聲)이 되는도다. 낮의 사람아 나주(羅州) 다시(多侍) 처녀야 보아라. 한여름 초록 귀 막고 광산(光山) 들판 어디에 에비 에미도 없는 자식들 떠돌아다니던가. 구름 조각 하나도 서릿발 같은 기쁨으로 삼키고 극락강(極樂江) 영산강(榮山江)이 눈을 부비며 에비 에미의 평생으로 우러러보는도다. 무등이여 날이 날마다 거기 있어 아침 햇살 삼천장(三千丈).. 읽고 싶은 시 2013.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