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아침 / 나태주 가지마다 돋아난 나뭇잎을 바라보고 있으려면 눈썹이 파랗게 물들 것만 같네요 빛나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려면 금새 나의 가슴도 바다같이 호수같이 열릴 것만 같네요 돌덤불 사이 흐르는 시냇물 소리를 듣고 있으려면 내 마음도 병아리떼같이 종알종알 노래할 것 같네요 봄비 맞고 새로 나온 나뭇잎을 만져보면 손끝에라도 금시 예쁜 나뭇잎이 하나 새파랗게 돋아날 것만 같네요 읽고 싶은 시 2022.05.16
오 월 / 피천득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신록을 바라다 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 면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 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읽고 싶은 시 2022.05.15
5월이 오면 / 황금찬 언제부터 창 앞에 새가 와서노래하고 있는 것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심산 숲내를 풍기며5월의 바람이 불어 오는 것을나는 모르고 있었다 저 산의 꽃이 바람에 지고 있는 것을나는 모르고 있었다 오늘 날고 있는 제비가 작년의 그 놈일까?저 언덕에 작은 무덤은누구의 무덤일까? 5월은 4월 보다정다운 달 병풍에 그린 난초가꽃 피는 달 미류나무 잎이 바람에 흔들리듯그렇게 사람을 사랑하고 싶은 달5월이다 읽고 싶은 시 2022.05.12
어린이 예찬 / 방정환 마른 잔디에 새 풀이 나고, 나뭇가지에 새 움이 돋는다고, 제일 먼저 기뻐 날뛰는 이도 어린이다. 봄이 왔다고 종달새와 함께 노래하는 이도 어린이고, 꽃이 피었다고 아비와 함께 춤을 추는 이도 어린이다. 산을 좋아하고 바다를 사랑하고, 큰 자연의 모든 것을 골고루 좋아하고, 진정으로 친애하는 이가 어린이요, 태양과 함께 춤추며 사는 이가 어린이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기쁨이요, 모든 것이 사랑이요, 또 모든 것이 친한 동무다. 자비와 평등과 박애와 환희와 행복과 이 세상 모든 아름다운 것만 한없이 많이 가지고 사는 이가 어린이다. 읽고 싶은 시 2022.05.11
진달래 / 이해인 해마다 부활하는 사랑의 진한 빛깔 진달래여 네 가느단 꽃술이 바람에 떠는 날 상처입은 나비의 눈매를 본 적이 있니 견딜 길 없는 그리움의 끝을 너는 보았니 봄마다 앓아 눕는 우리들의 지병(持病)은 사랑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다 한 점 흰 구름 스쳐 가는 나의 창가에 왜 사랑의 빛은 이토록 선연한가 모질게 먹은 마음도 해 아래 부서지는 꽃가루인데 물이 피되어 흐르는가 오늘도 다시 피는 눈물의 진한 빛깔 진달래여 읽고 싶은 시 2022.05.09
길 / 박노해 먼 길 걸어온 사람아 아무것도 두려워마라 그대는 충분히 고통받아 왔고 그래도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자신을 잃지마라 믿음을 잃지마라 걸어라 너만의 길로 걸어가라 길은 걷는자의 것이다 길은 걸으면 길이 시작된다 길은 걷는 자의 것이다 읽고 싶은 시 2022.04.24
부활송 / 구 상 죽어 썩은 것 같던 매화의 옛 등걸에 승리의 화관인 듯 꽃이 눈부시다. 당신 안에 생명을 둔 만물이 저렇듯 죽어도 죽지 않고 또다시 소생하고 변신함을 보느니 당신이 몸소 부활로 증거한 우리의 부활이야 의심할 바 있으랴! 당신과 우리의 부활이 있음으로 진리는 있는 것이며 당신과 우리의 부활이 있음으로 정의는 이기는 것이며 당신과 우리의 부활이 있음으로 달게 받는 고통은 값진 것이며 당신과 우리의 부활이 있음으로 우리의 믿음과 바람과 사랑은 헛되지 않으며 당신과 우리의 부활이 있음으로 우리의 삶은 허무의 수렁이 아니다. 봄의 행진이 아롱진 지구의 어느 변두리에서 나는 우리의 부활로써 성취될 그 날의 누리를 그리며 황홀에 취해있다. 읽고 싶은 시 2022.04.18
인생을 말하라면 / 김현승 인생을 말하라면 모래위에 손가락으로 부귀를 쓰는 사람도 있지만 인생을 말하라면 팔을 들어 한조각 저 구름 뜬 흰구름을 가리키는 사람도 있지만 인생을 말하라면 눈을 감고 장미의 아름다운 가시 끝에 입맞추는 사람도 있지만 인생을 말하라면 입을 다물고 꽃밭에 꽃송이처럼 웃고만 있는 사람도 있기는 있지만 인생을 말하라면 고개를 수그리고 뺨에 고인 주먹으로 온 세상의 시름을 호올로 다스리는 사람도 있지만 인생을 말하라면 나와 내 입은 두손을 내밀어 보인다. 하루의 땀을 쥔 나의 손을 이처럼 뜨겁게 펴서 보인다. 이렇게 거칠고 이렇게 씻겼지만 아직도 질기고 아직도 깨끗한 이 손을 물어 마지않는 너에게 펴서 보인다. 읽고 싶은 시 2022.04.11
황무지 ( The Waste Land ) / T.S. 엘리어트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으며 봄비로 잠든 뿌리를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망각(忘却)의 눈(雪)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球根)으로 가냘픈 생명을 키웠다 읽고 싶은 시 2022.04.05
섬진강 / 전원범 몇 생을 지나오면서 나눈 사연이기에 저리도 간절한 강이 되었는가 밤물결 더욱 세어서 감당하기 어려운 사랑도 증오도 기쁨도 슬픔도 모두 흐르는 것 내 강가에 와 서면 수줍은 듯 소리를 낮추고 긴긴 이야기만 반짝이고 있구나 누군들 푸른 강 하나 간직하지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 삶의 굽이굽이에 놓이는 설움도 설움의 마디마디에 젖어오는 눈물도 다 풀어져 내리고 있으니 우리네 여윈 잠을 가로 질러와서 침묵으로 흐르는 물살 그립고 그리워도 되돌아오지 못하고 차갑게 깨어나 홀로 길을 가고 있는 강이여 읽고 싶은 시 2022.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