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시 745

숲의 식구 / 도종환

구름은 비를 뿌리며 빠르게 동쪽으로 몰려가고숲의 나무들은 비에 젖은 머리를 흔들어 털고 있다처음 이 산에 들어올 땐나 혼자 있다는 생각을 했다그러나 내가 흔들릴 때같이 흔들리며 안타까워하는 나무들을 보며혼자 있다는 말 하지 않기로 했다아침저녁으로 맑은 숨결을 길어 올려 끼얹어주고조릿대 참대소리로 마음을 정결하게 빗질해주는 이는 누구일까숲과 나무가 내 폐의 바깥인 걸 알았다더러운 내 몸과 탄식을 고스란히 받아주는 걸 보며숲도 날 제 식구처럼 여기는 걸 알았다나리꽃 보리수 오리나무와 같이 있는 거지혼자 있는 게 아니다내가 숲의 뱃속에 있고숲이 내 정신의 일부가 되어 들어오고그렇게 함께 숨 쉬며 살아있는 것이다

읽고 싶은 시 2014.06.23

수 필 / 신달자

자질구레하다 손톱 거스러미와 옷섶 보푸라기가 일렁인다 잘 입은 정장에 단추 하나가 떨어진 것도 보인다 그 행간에 몇 개 염전이 산다 불가촉천민의 닳은 숟가락 보인다 가파른 언덕으로 리어카를 끌고 가는 등 보인다 지나치게 도도한 목을 꺽고 두 손을 모으고 생각에 잠긴 사람 있다 맨얼굴로 정직을 쟁기질하는 농부도 보인다 그 너머 정겹게 오라는 손짓이 있다 그것을 지나야 한다 맨얼굴 아래 더 아래 다시 가고 다시 가노라면 묵은 짐 내리게 하는 평안의 의자가 거기 있다 후미진 골목 가장자리 나팔꽃이 활짝 아침 열고 따뜻한 물속에 두 발 담그니 아 좋다.

읽고 싶은 시 2014.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