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시

해마(海馬) / 황동규

윤소천 2014. 6. 8. 08:09

 

 

 

해마(海馬)

 

 

 


 

 

아무래도 나는 너무 환한 곳

사방이 물비누로 정갈히 씻은 본 차이나 같은

실하고 눈부신 곳으로는 못 가리.

멸종 위기의 동물답게

막 어둡기 전 거리를 채 뜨지 못하고

짐말처럼 한세상 터벅터벅 걸어온 다리는

동그랗게 오므리고, 고개 약간 숙이고

겨울 저녁

뿔뿔이 제 갈 길 가는 사람들 위에 나직이

잘 뵈지 않게 떠서

혹 아는 이를 만나면 숙인 머리 더 숙이고

길에서 벗어나지 않고 벗어나

가볍게 떠돌리.

느린, 늘인 걸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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