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시 759

자 유 / 조병화

공중을 날 수 있는 날개를 가진 새만이자유를 살 수 있으려니 공중을 날며 스스로의 모이를 찾을 수 있는눈을 가진 새만이자유를 살 수 있으려니   그렇게 공중을 높이 날면서도지상에 보일까 말까 숨어 있는 모이까지찾아먹을 수 있는 생명을 가진 새만이자유를 살 수 있으려니   아, 그렇게스스로의 모이를 찾아다니면서먹어서 되는 모이와먹어서는 안 되는 모이를 알아차리는민감한 지혜를 가진 새만이자유를 살 수 있으려니   지상을 날아다니면서내릴 자리와 내려서는 안 될 자리머물 곳과 머물러서는 안 될 곳있을 때와 있어서는 안 될 때를가려서떠나야 할 때 떠나는 새만이자유를 살 수 있으려니   가볍게 먹는 새만이높이 멀리 자유를 날으리.

읽고 싶은 시 2024.09.15

가 을 / 김용택

가을입니다해질녘 먼 들 어스름이내 눈 안에 들어섰습니다윗녘 아랫녘 온 들녘이모두 샛노랗게 눈물겹습니다말로 글로 다 할 수 없는내 가슴속의 눈물겨운 인정과사랑의 정감들을당신은 아시는지요해 지는 풀섶에서 우는풀벌레들 울음소리 따라길이 살아나고먼 들 끝에서 살아나는불빛을 찾았습니다내가 가고 해가 가고 꽃이 피는작은 흙길에서저녁 이슬들이 내 발등을 적시는이 아름다운 가을 서정을당신께 드립니다. [출처]  가 을 / 김용택. 작성자 소천의 샘텨

읽고 싶은 시 2024.09.08

가 을 / 김현승

봄은 가까운 땅에서숨결과 같이 일더니   가을은 머나먼 하늘에서차가운 물결과 같이 밀려온다.   꽃잎을 이겨살을 빚던 봄과는 달리별을 생각하고 깍고 다듬어가을은내 마음의 보석(寶石)을 만든다.   눈동자 먼 봄이라면입술을 다문 가을.  봄은 언어 가운데서네 노래를 고르더니가을은 네 노래를 헤치고내 언어의 뼈마디를이 고요한 밤에 고른다.

읽고 싶은 시 2024.09.04

감사와 행복 / 이해인

내 하루의 처음과 마지막 기도한 해의 처음과 마지막 기도그리고 내 한 생애의 처음과 마지막 기도는'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되도록감사를 하나의 숨결 같은 노래로 부르고 싶다. 감사하면 아름다우리라.감사하면 행복하리라.감사하면 따뜻하리라.감사하면 웃게되리라. 감사가 힘들 적에도주문을 외우듯이 시를 읊듯항상 이렇게 노래해 봅시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살아서 하늘과 바다와산을 바라볼 수 있음을 감사합니다.하늘의 높음과 바다의 넓음과산의 깊음을 통해오래오래 사랑하는 마음을배울 수 있어 행복합니다.

읽고 싶은 시 2024.08.27

기억하라 / 박노해

기억하라 세상 모든 것의 시작은지금 너 하나로부터가 아니라는 것을 현실이 아무리 엉망진창으로 보여도우리 인생은 장엄하게 지속되는 흐름이고단 한순간도 역사에 단절이 없는 것 한 시절 잘못된 자들이 설친다 하여우리 삶이 그리 쉽게 딸려갈 줄 아느냐함부로 좌지우지되는 역사인 줄 아느냐 비록 일시 어둠이 오고 악인이 와도그마져 우리 안의 선의 불꽃을 일깨우고잠든 정의의 노래를 부르게 하는 것이니 고통의 날에도 다시 해는 뜨고 꽃은 피고사람들은 울고 웃고 사랑하고 서로 격려하며아이들은 선한 기억을 물려받고 자랄 것이니 다만 우리는 좀더 유장한 마음으로성찰하고 정리하고 앞을 내다보면서다시 희망의 길을 찿아가는 것이다 기억하라, 세상 모든 것의 시작은지금 여기 나 하나로부터라는 것을

읽고 싶은 시 2024.08.23

들을 걸으며 / 조병화

들을 걸으며무심코 지나치는 들꽃처럼삼삼히 살아갈 수는 없을까​너와 내가 서로 같이사랑하던 것들도 미워하던 것들도작게 피어난 들꽃처럼​지나가는 바람에 산들산들삼삼히 흔들릴 수는 없을까눈에 보이는 거 지나가면 그 뿐​정들었던 사람아헤어짐을 아파하지 말자들꽃처럼, 들꽃처럼, 실로 들꽃처럼​지나가는 바람에 산들산들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삼삼히, 그저 삼삼히

읽고 싶은 시 2024.08.12

다시 산에 와서 / 나태주

세상에 그 흔한 눈물세상에 그 많은 이별들을내 모두 졸업하게 되는 날산으로 다시 와정정한 소나무 아래 터를 잡고둥그런 무덤으로 누워억새풀이나 기르며솔바람 소리나 들으며 앉아 있으리​멧새며 소쩍새 같은 것들이 와서 울어 주는 곳그들의 애인들꺼정 데불고 와서 지저귀는햇볕이 천년을 느을 고르게 비추는 곳쯤에 와서밤마다 내리는 이슬과 서리를 마다하지 않으리​내 이승에서 빚진 마음들을 모두 갚게 되는 날너를 사랑하는 마음까지백발로 졸업하게 되는 날갈꽃 핀 등성이 너머네가 웃으며 내게 온다 해도하나도 마음 설레일 것 없고하나도 네게 들려줄 얘기 이제 내게 없으니너를 안다고도또 모른다고도숫제 말하지 않으리​그 세상에 흔한 이별이며 눈물그리고 밤마다 오는 불면들을내 모두 졸업하게 되는 날산에 다시 와서싱그런 나무들 옆..

읽고 싶은 시 2024.08.01

관상觀想 휴가 / 박노해

장마 전에 난 정말 바쁘다감자알을 캐고 블루베리를 따고 오이를 따 소금에 절이고 별목련과 팥배나무를 캐다 심고 정원의 꽃나무들 가지치기를 하고수로를 파 물길을 내주고 나면 나의 7월은 끝, 휴가다  나의 여름휴가는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관상觀想 휴가 문 앞에 “묵언 중입니다. 방문 사절. 미안.” 팻말을 내걸고 전화기도 뉴스도 끊고 테라스에 집필 책상과 의자를 치우고 낮고 편안한 의자를 놓고 기대앉아 묵연히 앞산을 바라보다 구름을 바라보다 아침 안개가 피어오르는 걸 지켜보고 불볕에 이글거리는 들녘을 바라보다가  느닷없는 천둥번개와 빗금 쳐 쏟아지는 빗줄기에 한순간 세계가 변하는 서늘한 기운에 잠깐 우수수 하다가 겹겹진 구름 사이로 태양빛이 쏟아지며 커다란 무지개가 갈라진 세계를 잇는 ..

읽고 싶은 시 2024.07.16

어우렁 더우렁 / 한용운

와서는 가고입고는 벗고잡으면 놓아야 할윤회의 소풍길에우린 어이타 인연 되었을꼬 봄날의 영화꿈 인듯 접고 너도 가고 나도 가야 할그 뻔한 길왜 왔나 싶어도 그래도...아니 왔다면 후회 했겠지! 노다지처럼 널린사랑 때문에 웃고가시처럼 주렁한미움 때문에 울어도 그래도그 소풍 아니면우리 어이 인연 맺어 졌으랴 한 세상 세 살다 갈 소풍 길 원 없이 울고 웃다가말똥 밭에 굴러도이승이 낫단 말빈 말 안되게 어우렁 더우렁그렇게 살다가보자

읽고 싶은 시 2024.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