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시 759

*우슬재를 지나며 / 이보영

허기진 내 영혼을따뜻하게 보듬어주는뒤틀린 가난을 따라 한 계단 올라서며 아버지 걸어가시던 슬픈 안부 묻는다 주름진 세월너머 메아리만  들려오고먼 강을 휘돌아 파도소리 부서지면 동백꽃 붉은 웃음도꿈결인 듯 아득하다 썼다가 지워버린 시간의 문신에는옛길로 가는 길이아리도록 새겨졌다 오늘도 파문이 일면하얀 포말 솟는다  * 우슬재 - 전남 해남의 관문

읽고 싶은 시 2025.01.12

Helman Hesse의 봄

작은 구름이 가볍게 하늘을 흘러간다아이들은 노래를 부르고 꽃은 풀섶에서 웃는다어디를 봐도 나의 고단한 눈은 책에서 읽는 것을 잊으려한다.내가 읽었던 어려운 것들은모두 먼지 처럼 날아가 버렸으며겨울날의 환상에 불과 했다.나의 눈은 깨끗하게 정화되어새로이 솟아나는 창조물을 바라본다.그러나 모든 아름다움의 무상에 대하여내 안의 마음속에 씌어져 있는 것은봄에서 봄으로 남겨졌으며이제 어떤 바람에도 날아가지 않으리.

읽고 싶은 시 2025.01.06

새해 아침의 기도 / 김남조

첫 눈뜸에눈 내리는 청산을 보게 하소서초록 소나무들의 청솔바람 소리를 듣게 하소서​아득한 날에예비하여 가꾸신은총의 누리다시금 눈부신 상속으로 주시옵고젊디 젊은 심장으로시대의 주인으로사명의 주춧돌을 짐지게 하소서​첫 눈뜸에진정한 친구를 알아보고서로의 속사랑에기름 부어 포옹하게 하여 주소서​생명의 생명인우리네 영혼 안엔사철 자라나는과일나무 숲이 무성케 하시고제일로 단맛나는 열매를 날이 날마다주님의 음식상에바치게 하옵소서 출처. 새해 아침의 기도/김남조  작성자 소천의 샘터

읽고 싶은 시 2025.01.03

그 해 겨울 / 윤삼현

생을 말리고삭풍에 내던저져벼랑 끝에 발 딛은 채떨면서 떨지 않아야했던내 젊은 날견딤의 눈송이를기억한다 아득히 시간의 강을 건너지금 내 영토에다시 눈발이 치고맨살로 겨울숲에 서서안단테의 영혼을 적신다 아무렴 그 해겨울만 하겠는가순정을 다 바쳐숨결 하나까지바스라져하얗게 비워낸내 불멸의 프레스토 공포와 축포를 번갈아 쏘아대고가슴에 음각되던 흔적들이시인줄도 모르고빛과 어둠층층이 쌓인들판의 눈을 허기진 입에 털어넣고기적처럼 버텨온그 겨울의 나무 하나를

읽고 싶은 시 2024.12.28

그리스도 폴의 江 16 / 구 상

​강은 과거에 이어져 있으면서 과거에 사로 잡히지 않는다.강은 오늘을 살면서 미래를 산다.강은 헤아릴 수 없는 집합이면서 단일과 평등을 유지한다.강은 스스로를 거울같이 비춰서 모든 것의 제 모습을 비춘다.강은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가장 낮은 자리를 택한다.강은 그 어떤 폭력이나 굴욕에도 무저항으로 임하지만 결코 자기를 잃지 않는다. 강은 뭇 생명에게 무조건 베풀고 아예 갚음을 바라지 않는다.강은 스스로가 스스로를 다스려서 어떤 구속에도 자유롭다.강은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면서 무상 속의 영원을 보여준다.강은 날마다 판토마임으로 나에게 여러 가지를 가르친다.

읽고 싶은 시 2024.12.22

세상에 나와 나는 / 나태주

​ 세상에 나와 나는아무 것도 내 몫으로차지하려 하지 않았습니다​꼭 갖고 싶은 것이 있었다면푸른 하늘빛 한 쪽바람 한 줌노을 한 자락​더 욕심을 부린다면굴러가는 나뭇잎새하나​세상에 나와 나는어느 누구도 사랑하는 사람으로간직해 두고 싶지 않았습니다​꼭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면단 한 사람눈이 맑은 그 사람가슴속에 맑은 슬픔을 간직한 사람​더 욕심을 부린다면늙어서 나중에도 부끄럽지 않게만나고 싶은 한 사람그대 출처 세상에 나와 나는/나태주, 작성자 소천의 샘터

읽고 싶은 시 2024.11.29

11월의 노래 / 김용택

​해 넘어가면당신이 더 그리워집니다​잎을 떨구며피를 말리며가을은 자꾸 가고당신이 그리워마을 앞에 나와산그늘 내린 동구길 하염없이 바라보다산그늘도 가버린 강물을 건넙니다​내 키를 넘는 마른 풀밭들을 헤치고강을 건너강가에 앉아헌 옷에 붙은 풀씨들을 떼어내며당신 그리워 눈물 납니다​못 견디겠어요아무도 닿지 못할세상의 외로움이마른 풀잎 끝처럼 뼈에 스칩니다​가을은 자꾸 가고당신에게 가 닿고 싶은내 마음은 저문 강물처럼 바삐 흐르지만나는 물 가버린 물소리처럼 허망하게빈 산에 남아억새꽃만 허옇게 흔듭니다​해 지고가을은 가고당신도 가지만서리 녹던 내 마음의 당신 자리는식지 않고 김 납니다 출처. 11월의 노래 / 깅용택. 작성자 소천의 샘터

읽고 싶은 시 2024.11.20

구상 선생님께 / 이해인

세상엔 시가 필요하다고유언처럼 말씀하신 시인 선생님오늘 우리는 모두각자의 자리에서 바삐 지내다가이렇게 아름다운 수도원 성당에11월의 나뭇잎을 닮은하나의 시가 되고 노래 되어기도하는 마음으로 모였습니다 하늘과 바람과 별의 시인 윤동주와도같은 해에 태어나신 강과 밭과 예수님의 시인 구상 선생님탄생 100주년은 세상에서아무나 축복받은 것이 아니겠지요후대에도 기억될 만큼그 삶이 훌륭했다는 증거겠지요 잠든 혼에 불을 놓는 예언자적 시인으로삶을 관조하고 연구하는 철학자로깊이 명상하는 기도자로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언론인으로문학을 가르치는 넓은 마음의 스승으로오랜 세월 우리에게 기쁨을 주셨습니다 남에게 관대하고 스스로에겐 엄격하게 대하는 것이덕과 지혜임을 일러주셨습니다우정을 잘 가꾸는 당신만의 비법도지인들에게 살짝 알..

읽고 싶은 시 2024.11.19

괜찮은 척하며 사는 거지 / 이해인

사람들은 제 각각 괜찮은 척하며 살아가는 거지그러나 괜찮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프지 않은 척하며 살아내는 거지,그러나 아프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힘들지 않은 척하며 이겨내는 거지그러나 힘들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보이지는 않지만모두 자신 만의 삶의 무게를이고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남의 짐은 가벼워 보이고내 짐은 무겁게 느끼며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모퉁이를 돌아가 봐야거기에 무엇이 있는지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가 보지도 않고 아는척 해 봐야득되는 게 아무것도 없지요.바람이 불고 비가 쏟아져 아픔과 고민이 다 쓸려간다 해도꼭 붙들어야 할 것이 있으니바로 믿음이라는 마음입니다.  출처. 괜찮은 척하며 사는 거지 / 이해인, 작성자 소천의 샘터

읽고 싶은 시 2024.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