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로 6 / 홍윤숙 귀 로 6 돌아보면 세상은 해 뜨는 날보다 눈, 비, 때로 폭풍, 가끔 까닭 모를 돌팔매 심심치 않게 날아들어 가슴에 구멍 뚫던 날들 허다했지만 저녁이면 드높이 창마다 달아 주시는 어머니 기도의 등불 늘 거기에 있어 어두운 길 헤매지 않고 돌아갔습니다 다친 가슴 희망으로 다시 약 바르.. 읽고 싶은 시 2015.02.12
소 금 강 / 나석중 소 금 강 명불허전이다 금강산만큼 빼어난 데가 있다고 율곡이 처음 불러주었던 소금강 바위에 구덩이를 파고 세차게 흐르는 저 계곡물이 선생이 보았던 그 물일 것이다 저 물이 강의 허기를 채우고 바다를 바다이게 하다가 힘 밭아 다시 오대산에 돌아와 강(剛)해져 가던 일 몇 번이던가.. 읽고 싶은 시 2015.02.11
괜 찮 다 / 나석중 괜 찮 다 소식이 없어도 잘 있다는 걸 안다 지금이라도 나에게 전화를 하고 싶겠지 삶이 오줌 누고 고추 볼 새 없겠지만 언뜻언뜻 전화기를 잡았다 놨다 하겠지 하고 싶은 전화를 오래 못하는 것은 죄 지은 게 있어서가 아니라 혼자 면목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그거 야속타는 생각.. 읽고 싶은 시 2015.02.09
창 / 홍윤숙 창 창은 열려 있어야 한다 닫힌 창은 창이 아니다 환희 열린 창 앞에 서면 미지의 먼 나라들이 뭇별로 떠오르고 끝없이 아득한 길들이 나를 불렀다 나는 넓은 세상 길 위에서 수만 날을 꿈꾸며 떠돌았다 지친 여로의 날 저물고 아득한 마을 등불 켜지면 키 낮은 굴뚝에서 하얀 저녁 연기 .. 읽고 싶은 시 2015.02.07
빈 항아리 5 / 홍윤숙 빈 항아리 5 빈 항아리 속엔 잡목나무 툭툭 찍어 무작위로 세운 산사 하나 아니 산사도 못되는 암자 하나 있습니다 울타리도 산문(山門)도 없는 온종일 비바람과 마른 잎과 정체 모를 모스가 제멋대로 날아드는 암자엔 먼 길에 핍진한 나그네 혼자 저녁 등불 켜놓고 앉아 있습니다 그의 기.. 읽고 싶은 시 2015.02.05
걸어서 간다 / 홍윤숙 걸어서 간다 날마다 날마다 걸어서 간다 걸어서 밖에는 갈 수 없는 길 싫어도 가야하는 태어난 자의 숙명의 길 길도 없는 길 보이지 않는 길을 걸어서 간다 가는 길이 어딘지 어디서 끝나는지 알 수 없고 알아도 소용없는 멀고도 아득한 팔십년의 길 잠자는 시간에도 꿈을 꾸면서도 유예.. 읽고 싶은 시 2015.02.03
길을 걷다가 / 홍 윤 숙 길을 걷다가 길을 걷다가 잠깐씩 발을 멈추고 뒤돌아본다 잎 떨군 나뭇가지들이 기하학적 선으로 아름다운 문양을 그리고 있는 그 모양이 처음 본 세상처럼 신선하다 묘연한 길 끝 어딘가에 젊은 날의 초상화 한 폭 떠오를 것도 같은 나는 다시 걷는다 가다가 다시 돌아본다 돌아보는 일.. 읽고 싶은 시 2015.02.01
꽃을 그리는 여자 / 허문정 꽃을 그리는 여자 얼굴은 다섯 장 꽃잎 몸은 푸른 꽃대궁 그녀의 단물로 목을 축이면 나도 덩달아 꽃이 되지 살구향이 배지 우리도 시들어 더는 꽃이 아닐 때 서로의 마른 꽃대궁 부벼 향기를 지펴주고 정 하나 놓고 가는 환한 열반이면 좋겠어 마음이 꽃이라서 꽃을 그리는 여자 꽃을 그.. 읽고 싶은 시 2015.01.29
길 / 허문정 길 하루 일에 지친 차들이 길가에 엎드려 눈을 붙이고 있다 길이 없다면 저 노숙자들은 어디로 가야했을까 길은 벼랑까지 가 보아 끝이라고 여긴 곳이 끝이 아님을 알기에 펄펄 끓는 차의 심장을 녹여주며 고단한 손을 잡아준다 가난한 사람들이 내몰리고 늘 밟히기만 해 밟히는 자들의 .. 읽고 싶은 시 2015.01.26
어두워질 무렵 / 도종환 어두워질 무렵 홑이불을 살며시 끌어다 얼굴을 덮듯 산이 어둠을 조금씩 끌어 덮는 동안 먼 들판이 가까운 들을 가만가만 받아들이고 시월이 십일월로 이어지듯 모든 사물들이 하나씩 어둠의 서늘하고 적요한 영역 속으로 들어갈 때 나도 내 영토를 다 처분하여 그 나라에 들고 싶을 때 .. 읽고 싶은 시 2015.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