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시 748

잡초를 뽑으며 / 홍윤숙

잡초를 뽑으며잡념을 뽑으며긴 여름날 땀을 흘렸다 진실의 칼을 갈아 허위의 여름을 베어 버리고잡초의 흉계(凶計)를 베어버리고한 발씩 긴 비애의 숙근(宿根)을 뿌리째 뽑아내고빈자리에평화의 마른 흙을 갈아 덮었더니겨울이 어느새 먼저 들어와땀으로 젖은 땅을 점거(占據)하고불모의 암석(巖石)을 깔아 버렸다 긴 여름날 땀 흘려 뽑아낸잡초의 뿌리이름 모를 비애며 사랑 기타자고 새면 길로 자라 해를 가리던질기고 악센 잡초의 뿌리늘 한 줌씩 피 묻은 살점이 묻어 있더니그게 바로 내 뜰의 꽃이었음을살과 피의 집이었음을겨울이 와서야 내가 알았다빈 뜰을 쓸어가는 바람을 보고야그걸 알았다

읽고 싶은 시 2015.03.19

약 속 / 홍윤숙

온종일속옷 적시고속살 적시고마른 딱지 솔솔 붓끝으로 헤집으며사븐사븐 뼛속으로 젖어드는 비 이 비 그치면 저 숲의 잿빛 나무들일제히 연록색 발진으로전신이 가려워 미칠 것이다절개도 없이 무너질 것이다 마른 살 톡톡 실밥 터트리며 간질이는 비의 손끝그 손끝에 닿으면돌처럼 굳은살도 석류 알 벌여지듯 못 견디게 벌어져복사꽃 같은 오얏꽃 같은 꽃봉오리 뭉실뭉실 맺을 수밖에 없다그럴 수밖에 없다 약속이니까 봄이 오고 꽃이 핀다는 이 평범한 질서가이 세상 살아 있는 날의 아름다운 약속이이제야 눈부시게 내게 보인다그 많은 세월 다 지내 놓고더는 꿈꿀 수 없는 시간이 되어서야

읽고 싶은 시 2015.03.15

귀 로 10 / 홍윤숙

누군가 등 뒤에서 날마다 똑똑카운트다운을 하고 있다하루...... 또...... 하루...... 그날이오면"물 위에 이름 석 자 쓰고 쓰다가"*한 생애 꾸던 꿈 비로소 깨어 일어나리라 서성대는 문 밖에 시간의 막차 당도해 있고어디선가 날카로운 출발의 호각 소리금시라도 천지를 울릴 것 같은일몰의 막막한 생의 간이역 언제나 몸보다 마음이 먼저 일어나쓰러지는 육신 애써 추슬러 세워 왔다날마다 내리치는 채찍에뭉그러진 살 마침내 더는 일어서지 못하고 무릎 꿇으면마음도 피 흘리며망연히 쓰러진 육신을 굽어보리라 사제가 베푸는 종부성사에 길을 잡고살아서 지은 영욕의 십자가 땅 위에 내려놓고하늘이 보낸 천사의 손을 잡고광야의 별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등 뒤에 떠오르는 하얗게 지워지는 대형화면돌아보며 돌아보며이로써 내 생애..

읽고 싶은 시 2015.02.26

귀 로 9 / 홍윤숙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서방정토로 저녁노을 지고수목으로 풀어지는 숲 속 가지 사이로검프르게 드러나는 밤하늘에수줍게 떠오르는 초저녁 별 하나물에 어려 만지면 가슴까지 젖을 것 같은,사람아 너는 아마도 별에서 왔나 보다태어나는 생명은 누구나 별 하나 타고 난다 하였으니너의 별도 지금 저 먼 밤하늘에 박혀 있을 터하여 사람의 일생은 별을 바라보며별 같은 꿈을 꾸고 꿈 같은 별을 향해 걸어가는 것철없던 어린 시절부터 나이 들어 어른이 되고병원이나 산책 길을 오락가락하는 희망 없는 나이가 되어서도여전히 별을 보면 알 수 없는 그리움에 가슴 젖는 건아무래도 우리가 별에서 태어난 때문이리라별에서 왔으니 별로 돌아가무주 공원의 자유가 되고다시 생명을 이루는 원소가 되어......

읽고 싶은 시 2015.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