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워질 무렵
홑이불을 살며시 끌어다 얼굴을 덮듯
산이 어둠을 조금씩 끌어 덮는 동안
먼 들판이 가까운 들을 가만가만 받아들이고
시월이 십일월로 이어지듯
모든 사물들이 하나씩 어둠의 서늘하고
적요한 영역 속으로 들어갈 때
나도 내 영토를 다 처분하여 그 나라에 들고 싶을 때
밀입국 하듯 소리 없이 어둠의 장막을 열고
그 안으로 몸을 밀어 넣으면
가만히 나를 이끄는 빈 손 하나 있어
내 작고 낮은 몸이 그의 품에 스미고
그의 여백 또한 내 몸에 편안히 흘러들어
타자의 시야에서 비로소 천천히 천천히 지워지는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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