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시 741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 샤를 드 푸코

밖으로 드러나는 행위보다 인간 자신이 먼저임을,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사랑 받을 만한 사람이 되는 것 뿐입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선택입니다 내가 아무리 마음을 쏟아 다른 사람을 돌보아도 그들은 때로 보답도 반응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신뢰를 쌓는데는 여러 해가 걸려도,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라는 것을,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인생은 무엇을 손에 쥐고 있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믿을 만한 사람이 누구인가에 달려있음을,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최대치에 나 자신을 비교하기보다는 내 자신의 최대치에 나를 비교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인생은 무슨 사건이 일어났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일어난 사건에..

읽고 싶은 시 2022.01.02

구절초꽃 / 김용택

하루해가 다 저문 저녁 강가로 산그늘을 따라서 걷다보면은 해 저무는 물가에는 바람이 일고 물결들이 밀려오는 강기슭에는 구절초꽃 새하얀 구절초꽃이 물결보다 잔잔하게 피었습니다 구정초꽃 피면은 가을 오고요 그절초꽃 지면은 가을 가는데 하루해가 다 저문 저녁 강가에 산 너머 그 너머 검은 산 너머 서늘한 저녁달만 떠오릅니다 구절초꽃 새하얀 구절초꽃에 달빛만 하얗게 모여듭니다 소쩍새만 서럽게 울어댑니다

읽고 싶은 시 2021.12.15

11월의 나무처럼 / 이해인

사랑이 너무 많아도 사랑이 너무 적어도 사람들은 쓸쓸하다고 말하네요 보이게 보이지 않게 큰 사랑을 주신 당신에게 감사의 말을 찾지 못해 나도 조금은 쓸쓸한 가을이에요 받은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내어놓은 사랑을 배우고 싶어요 욕심의 그늘로 괴로웠던 자리에 고운 새 한 마리 앉히고 싶어요 11월의 청빈한 나무들 처럼 나도 작별 인사를 잘하며 갈 길을 가야겠어요

읽고 싶은 시 2021.12.04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 정호승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낙엽이 떨어질 때를 아는 사람을 사랑하라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낙엽이 왜 낮은데로 떨어지는지를 아는 사람을 사랑하라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한 잎 낙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 시월의 붉은 달이 지고 창밖에 따스한 불빛이 그리운 날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한 잎 낙엽으로 떨어져 썩을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 한 잎 낙엽으로 썩어 다시 봄을 기다리는 사람을 사랑하라

읽고 싶은 시 2021.11.27

나 무 / 정지용

얼굴이 바로 푸른 한울을 우러렀기에 발이 항시 검은 흙을 향하기 욕되지 않도다. 곡식알이 거꾸로 떨어져도 싹은 반듯이 위로! 어느 모양으로 심기어 졌더뇨? 이상스런 나무 나의 몸이여! 오오 알맞는 위치! 좋은 우아래! 아담의 슬픈 유산도 그대로 받었노라. 나의 작은 연륜으로 이스라엘의 이천년을 헤었노라. 나의 존재는 우주의 한낱 초조한 오점이었도다. 목마른 사슴이 샘을 찾어 입을 잠그듯이 이제 그리스도의 못 박히신 발의 성혈(聖血)에 이마를 적시며- 오오! 신약(新約)의 태양을 한아름 안다.

읽고 싶은 시 2021.11.14

두 가지만 주소서 / 박노해

나에게 오직 두 가지만 주소서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그것을 바꿀 수 있는 인내를 바꿀 수 없는 것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를 나에게 오직 두 가지만 주소서 나보다 약한 자 앞에서는 겸손할 수 있는 여유를 나보다 강한 자 앞에서는 당당할 수 있는 깊이를 나에게 오직 두 가지만 주소서 가난하고 작아질수록 나눌 수 있는 능력을 성취하고 커 나갈수록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관계를 나에게 오직 한 가지만 주소서 좋을 때나 힘들 때나 삶에 뿌리박은 깨끗한 이 마음 하나만을

읽고 싶은 시 2021.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