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나러 너에게 간다 / 유안진 나를 만나러 너에게 간다 하마터면 밟을 뻔한 풀밭 귀퉁이 끝에 초등학교적 화단의 채송화 피었다. 붉고 흰 꽃송이를 정수리 층층으로 피워 올린 접시꽃 발치쯤, 샛빨간 벼슬모자 높이 쓴 맨드라미 뒷꿈치에서, 그냥 잡풀 앉은뱅이꽃 채송화가 지상에서 지하와 가장 가까운 곳에, 땅위에.. 읽고 싶은 시 2015.06.18
꽃으로 잎으로 / 유안진 꽃으로 잎으로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한 곳이며 뭐니뭐니 해도 사랑은 아름답다고 돌아온 꽃들 낯 붉히며 소근소근 잎새들도 까닥까닥 맞장구 치는 봄날 속눈썹 끄트머리 아지랑이 얼굴이며 귓바퀴에 들리는 듯 그리운 목소리며 아직도 아직도 사랑합니다. 꽃지면 잎이 돋듯 사랑진 그 자.. 읽고 싶은 시 2015.06.14
밤 / 유안진 밤 밤에는 웬지 죄송스러워집니다 그지없이 그지없이 죄송할 뿐이라고 감히 아뢰옵니다. 부끄러움 무릅쓰고 잘못 살아왔다고 고백하게 됩니다. 입이 아닌 가슴으로 심장으로 다만 아뢰옵고 고백하게 됩니다. 가장 초라한 모양으로서도 순진하고 진실할 수 있는 밤에는 마음밖의 모든 것.. 읽고 싶은 시 2015.06.11
바다에서 바다를 못 읽다 / 유안진 바다에서 바다를 못 읽다 바다에 와서 바다를 읽어봤다. 바다의, 망망함을 물빛을 물비늘을 깊이를 수평선을 파도를 해일을...... 물의 변신 물의 언어를, 물에 쓰이는 상형문자를, 해독할 수 없는 태초의 말씀을, 방대한 바이블을 태초의 언어로 된 태초의 경전 창조신의 말씀책을 알아 못.. 읽고 싶은 시 2015.06.08
누 더 기 / 정호승 누 더 기 당신도 속초 바닷가를 혼자 헤맨 적이 있을 것이다 바다로 가지 않고 노천횟집 지붕 위를 맴도는 갈매기들과 하염없이 놀다가 저녁이 찾아오기도 전에 여관에 들어 벽에 옷을 걸어놓은 적이 있을 것이다 잠은 이루지 못하고 휴대폰은 꺼놓고 우두커니 벽에 걸어놓은 옷을 한없.. 읽고 싶은 시 2015.06.04
어머니를 위한 자장가 / 정호승 어머니를 위한 자장가 잘자라 우리 엄마 할미꽃처럼 당신이 잠재우던 아들 품에 안겨 장독위에 내리던 함박눈처럼 잘자라 우리 엄마 산 그림자처럼 산 그림자 속에 잠든 산새 들처럼 이 아들이 엄마 뒤를 따라갈 때까지 잘자라 우리 엄마 아기처럼 엄마 품에 안겨 자던 예쁜 아기의 저절.. 읽고 싶은 시 2015.05.31
물의 꽃 / 정호승 물의 꽃 강물위에 퍼붇는 소나기가 물의 꽃이라면 절벽으로 떨어지는 폭포가 물의 꽃잎이라면 엄마처럼 섬기슭을 쓰다듬는 하얀 파도의 물줄기가 물의 백합이라면 저 잔잔한 강물의 물결이 물의 장미라면 저 거리의 물의 분수가 물의 벗꽃이라면 그래도 낙화할 때를 아는 모든 인간의 .. 읽고 싶은 시 2015.05.30
산을 오르며 / 정호승 산을 오르며 내려가자 이제 산은 내려가기 위해서 있다 내려가자 다시는 끝까지 오르지 말자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내려가는 길밖에 없다 춘란도 피고 나면 지고 두견도 낙엽이 지면 그뿐 삭발할 필요는 없다 산은 내려가기 위해서 있다. 내려가자 다시는 발자국을 남기지 말자 내려가는 .. 읽고 싶은 시 2015.05.28
눈물 / 이해인 눈 물 새로 돋아난 내 사랑의 풀숲에 맺히는 눈물 나를 속일 수 없는 한 다발의 정직한 꽃 당신을 부르는 목소리처럼 간절한 빛깔로 기쁠 때 슬플 때 피네 사무치도록 아파 와도 유순히 녹아 내리는 흰 꽃의 향기 눈물은 그대로 기도가 되네 뼛속으로 흐르는 음악이 되네 읽고 싶은 시 2015.05.24
기쁨이란 반지는 / 이해인 기쁨이란 반지는 기쁨은 날마다 내가 새로 만들어 끼고 다니는 풀꽃 반지 누가 눈여겨보지 않아도 소중히 간직 하다가 어느 날 누가 내게 달라고 하면 이내 내어주고 다시 만들어 끼지 크고 눈부시지 않아 더욱 아름다워라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많이 나누어 가질수록 그 향기를 더하네 기.. 읽고 싶은 시 2015.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