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시

귀 로 10 / 홍윤숙

윤소천 2015. 2. 26. 05:09

 

 

 

 

누군가 등 뒤에서 날마다 똑똑

카운트다운을 하고 있다

하루...... 또...... 하루......

 

그날이오면

"물 위에 이름 석 자 쓰고 쓰다가"*

한 생애 꾸던 꿈 비로소 깨어 일어나리라

 

서성대는 문 밖에 시간의 막차 당도해 있고

어디선가 날카로운 출발의 호각 소리

금시라도 천지를 울릴 것 같은

일몰의 막막한 생의 간이역

 

언제나 몸보다 마음이 먼저 일어나

쓰러지는 육신 애써 추슬러 세워 왔다

날마다 내리치는 채찍에

뭉그러진 살

 

마침내 더는 일어서지 못하고 무릎 꿇으면

마음도 피 흘리며

망연히 쓰러진 육신을 굽어보리라

 

사제가 베푸는 종부성사에 길을 잡고

살아서 지은 영욕의 십자가 땅 위에 내려놓고

하늘이 보낸 천사의 손을 잡고

광야의 별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등 뒤에 떠오르는 하얗게 지워지는 대형화면

돌아보며 돌아보며

이로써 내 생애 후회는 없다고 말하리라

 

물 위에 이름 석 자 쓰고 쓰다가

한 생애 꾸던 꿈 말갛게 깨어 일어나는 날

너는 이승의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비로소 알리라

마음이 몸을 두고 떠나는 날에......

 

* 한 생애를 집약할 수 있는 말, 한평생 죽도록 쓰고 생각하며 찾아온 말이었다.

그런데 그 말이 이미 180년 전 영국의 시인 존 키츠가 그의 묘비명에 남긴 말이라고

한다. 무지와 어리석음과 실망에 자탄했지만 그래도 이 말은 내가 깨달아 얻은

나의 말이라는오기로 버릴 수 없어 그대로 쓰기로 했다. 존 키츠는 1795년에 태어나

1821년 결핵으로 요절한 시인이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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