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길에 서서 / 신석정 들길에 서서 푸른 산이 흰 구름을 지니고 살듯 내 머리 위에는 항상 푸른 하늘이 있다 하늘을 향하고 산림처럼 두 팔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일이냐 두 다리는 비록 연약하지만 젊은 산맥으로 삼고 부절히 움직인다는 둥근 지구를 밟았거니... 푸른 산처럼 든든하게 지구를 .. 읽고 싶은 시 2017.10.29
고독의 끝 / 김현승 고독의 끝 거기서 나는 옷을 벗는다. 모든 황혼이 다시는 나를 물들이지 않는 곳에서. 나는 끝나면서 나의 처음까지도 알게 된다. 신은 무한히 넘치어 내 작은 눈에는 들일 수 없고 나는 너무 잘아서 신의 눈엔 끝내 보이지 않았다. 무덤에 잠깐 들렀다가 내게 숨막혀 바람도 따르지 않는 .. 읽고 싶은 시 2017.10.21
고독을 위한 의자 / 이해인 고독을 위한 의자 홀로 있는 시간은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호수가 된다. 바쁘다고 밀쳐두었던 나 속의 나를 조용히 들여다 볼 수 있으므로. 여럿 속에 있을 땐 미처 되새기지 못했던 삶의 깊이와 무게를 고독 속에 헤아려볼 수 있으므로. 내가 해야 할 일 안해야 할 일 분별하며 내밀한 양.. 읽고 싶은 시 2017.10.15
달빛 기도 / 이해인 달빛 기도 너도 나도 집을 향한 그리움으로 둥근달이 되는 한가위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이 달빛처럼 순하고 부드럽기를 우리의 삶이 욕심의 어둠을 걷어내 좀 더 환해지기를 모난 미움과 편견을 버리고 좀 더 둥굴어지기를 두손모아 기도하려니 하늘보다 내 마음에 고운달이 먼.. 읽고 싶은 시 2017.10.03
가을 바람 / 이해인 가을 바람 숲과 바다를 흔들다가 이제는 내 안에 들어와 나를 깨우는 바람 꽃이 진 자리마다 열매를 키워놓고 햇빛과 손잡는 눈부신 바람이 있어 가을을 사네 바람이 싣고 오는 쓸쓸함으로 나를 길들이면 가까운 이들과의 눈물겨운 이별도 견뎌낼 수 있으리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사랑과 .. 읽고 싶은 시 2017.10.03
가을 노래 / 이해인 가을 노래 하늘은 높아 가고 마음은 깊어 가네 꽃이 진 자리마다 열매를 키워 행복한 나무여, 바람이여 슬프지 않아도 안으로 고여 오는 눈물은 그리움 때문인가 가을이 오면 어머니의 목소리가 가까이 들리고 멀리 있는 친구가 보고 싶고 죄없이 눈이 맑았던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고 싶.. 읽고 싶은 시 2017.09.25
소박한 기도 / 김남조 소박한 기도 이 뜨거운 염원을 아륄 어질고 명민한 기도의 말을 알게 하옵소서 산다는 건 뼈저리게 존귀한 사실 번민하고 애쓰는 일이나 외로운 병석에서 홀로 우는 일도 모두 아름다웠다고 만 아뢰고 싶습니다 솔로몬의 영화보다 들에 핀 한 송이 백합을 더 높이신 당신의 선함과 아름.. 읽고 싶은 시 2017.09.13
길 / 고 은 길 길이 없다! 여기서부터 희망이다 숨 막히며 여기서부터 희망이다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며 간다 여기서부터 역사이다 역사란 과거가 아니라 미래로부터 미래의 험악으로부터 내가 가는 현재 전체와 그 뒤의 미지까지 그 뒤의 어둠까지이다 어둠이란 빛의 결핍일 뿐 여기서부터 희망.. 읽고 싶은 시 2017.09.05
꽃 멀 미 / 이해인 꽃 멀 미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나면 말에 취해서 멀미가 나고 꽃들을 너무 많이 대하면 향기에 취해 멀미가 나지 살아 있는 것은 아픈 것 아름다운 것은 어지러운 것 너무 많아도 싫지 않은 꽃을 보면서 나는 더욱 사람들을 사랑하기 시작하지 사람들에게도 꽃처럼 향기가 있다는 걸 새.. 읽고 싶은 시 2017.08.20
사랑법 / 강은교 사랑법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래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그대 살 속의 오래 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강물과 누워있는 누워있는 구름. 결코 잠깨지 않는 별을.. 읽고 싶은 시 2017.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