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시 743

겨울나무 / 이해인

흰 눈 내리는 날 밤새 깨어 있던 겨울나무 한 그루 창을 열고 들어와 내게 말하네 맑게 살려면 가끔은 울어야 하지만 외롭다는 말은 함부로 내뱉지 말라고 사랑하는 일에도 자주 마음이 닫히고 꽁해지는 나에게 나보다 나이 많은 나무가 또 말하네 하늘을 보려면 마음을 넓혀야지 별을 보려면 희망도 높여야지 이름 없는 슬픔의 병으로 퉁퉁 부어 있는 나에게 어느새 연인이 된 나무는 자기도 춥고 아프면서 나를 위로하네 흰 눈 속에 내 죄를 묻고 모든 것을 용서해 주겠다고 나의 나무는 또 말하네 참을성이 너무 많아 나를 주눅들게 하는 겨울나무 한 그루

읽고 싶은 시 2017.12.18

사랑의 침묵 / 도종환

꽃들에게 내 아픔 숨기고 싶네 내 슬픔 알게 되면 꽃들도 울 테니까 얼음이 녹고 다시 봄은 찾아와 강물이 내게 부드럽게 말 걸어올 때도 내 슬픔 강물에게 말하지 않겠네 강물이 듣고 나면 나보다 더 아파하며 눈물로 온 들을 적시며 갈 테니까 겨울이 끝나고 북서풍 물러갈 무렵엔 우리 사랑 끝나야 하는 이유를 나는 바람에게도 말하지 않겠네 이제 막 눈을 뜨는 햇살에게도 삶이 왜 괴로움인지 말하지 않겠네 이제 막 눈을 뜨는 햇살에게도 삶이 왜 괴로움인지 말하지 않겠네 새 떼들이 돌아오고 들꽃 잠에서 깨어나도 아직은 아직은 말하지 않겠네 떠나는 사람 붙잡을 수 없는 진짜 이유를 꽃들이 듣고 나면 나보다 더 슬퍼하며 아름다운 꽃잎 일찍 떨구고 말 테니까

읽고 싶은 시 2017.12.10

자화상 / 유안진

한 오십년 살고보니 나는 나는 구름의 딸이요 바람의 연인이라 눈과 서리와 비와 이슬이 강물과 바닷물이 뉘기 아닌 바로 나였음을 알아라 수리부엉이 우는 이 겨울도 한밤중 뒷뜰 언 밭을 말달리는 눈바람에 마음 헹구는 바람의 연인 가슴속 용광로에 불지피는 황홀한 거짓말을 오오 미처볼 뿐 대책없는 불쌍한 희망을 내 몫으로 오늘 몫으로 사랑하여 흐르는 일 삭아질수록 새우젓갈 맛나듯이 때얼룩에 쩔을수록 인생다워지듯이 산다는 것도 사랑한다는 것도 때묻히고 더럽혀지며 진실보다 허상에 더 감동하며 정직보다 죄업에 더 집착하며 어디론가 쉬지 않고 흘러가는 것이다 나란히 누웠어도 서로 다른 꿈을 꾸며 끊임없이 떠나고 떠도는 것이다 멀리 멀리 떠나 갈수록 가슴이 그득히 채워지는 것이다 갈 데까지 갔다가는 돌아오는 것이다 하늘..

읽고 싶은 시 2017.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