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시

가을 바람 / 이해인

윤소천 2017. 10. 3. 19:38


가을 바람




숲과 바다를 흔들다가

이제는 내 안에 들어와

나를 깨우는 바람

꽃이 진 자리마다

열매를 키워놓고

햇빛과 손잡는

눈부신 바람이 있어

가을을 사네

바람이 싣고 오는

쓸쓸함으로

나를 길들이면

가까운 이들과의

눈물겨운 이별도

견뎌낼 수 있으리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사랑과 기도의

아름다운 말

향기로운 모든 말

깊이 접어두고

침묵으로 침묵으로

나를 내려가게 하는

가을 바람이여

하늘 길에 떠가는

한 조각 구름처럼

아무 매인 곳 없이

내가 님을 뵈옵도록

끝까지

나를 밀어내는

바람이 있어

나는

홀로 가도

외롭지 않네


'읽고 싶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독을 위한 의자 / 이해인  (0) 2017.10.15
달빛 기도 / 이해인  (0) 2017.10.03
가을 노래 / 이해인  (0) 2017.09.25
소박한 기도 / 김남조  (0) 2017.09.13
길 / 고 은  (0) 2017.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