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 자 / 오세영 탕 자 더 이상 갈 수가 없다. 날은 저물고, 인적은 끊기고 물결은 무심히 철썩이는데 아득히 반짝이는 강 건너 등불, 여어이, 여어이, 부르는 목소리는 쉬어 있는데, 강둑엔 메아리만 돌아오는데 어느 별이 불렀을까. 푸드득 어둠 속을 날아가는 물새 한 마리. 더 이상 갈 수가 없다. 하늘엔.. 읽고 싶은 시 2018.08.05
후 회 / 피천득 후 회 산길이 호젓다고 바래다 준 달 세워 놓고 문 닫기 어렵다 거늘 나비같이 비에 젖어 찾아온 그를 잘 가라 한 마디로 보내었느니 읽고 싶은 시 2018.07.14
모른다 ... / 정호승 모른다 ... 사람들은 사랑이 끝난 뒤에도 사랑을 모른다 사랑이 다 끝난 뒤에도 끝난 줄을 모른다 창 밖에 내리던 누더기 눈도 내리다 지치면 숨을 죽이고 새들도 지치면 돌아갈 줄 아는데 사람들은 누더기가 되어서도 돌아갈 줄 모른다 읽고 싶은 시 2018.07.06
마음이 아플 때 / 이해인 마음이 아플 때 꼭 하루씩만 살기로 했다몸이 많이 아플 때 꼭 한순간만 살기로 했다고마운 것만 기억하고 사랑한 일만 떠올리며 어떤 경우에도 남의 탓을 안 하기로 했다고요히 나 자신만 들여다보기로 했다내게 주어진 하루만이 전 생애라고 생각하니저만치서 행복이 웃으며 걸어왔다 읽고 싶은 시 2018.06.28
꽃을 보려면 / 정호승 꽃을 보려면 꽃씨 속에 숨어있는 꽃을 보려면 고요히 눈이 녹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있는 잎을 보려면 흙의 가슴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있는 어머니를 만나려면 들에 나가 먼저 봄이 되거라 꽃씨 속에 숨어있는 꽃을 보려면 평생 버리지 않았던 칼을 버려라 읽고 싶은 시 2018.06.20
숨어 있는 것들은 아름답다 / 신경림 숨어 있는 것들은 아름답다 숨어 있는 것들은 아름답다. 들리지 않아 아름답고 보이지 않아 아름답다. 소란스러운 장바닥에서도 아름답고, 한적한 산골 번잡한 도시에서도 아름답다. 보이지 않은 데서 힘을 더하고, 들리지 않은 데서 꿈을 보태면서, 그러나 드러나는 순간. 숨어있는 것들.. 읽고 싶은 시 2018.06.06
여행 / 조오현 여 행 어떤 사람이 나를 만나 뵙고 싶다고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음을 얻고 싶다고 전화를 했다. 나는 참 잘난 놈이라고 속으로 웃고는 큰소리로 "나는 지금 여행 중이다"했더니 그 사람이 "언제 돌아오십니까"하고 묻기에 "그건 나도 몰라 어쩜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지도 몰라"하고 .. 읽고 싶은 시 2018.05.29
그 밖의 사람들 / 김남조 그 밖의 사람들 가난한 이와 병든 이 감옥에 갇힌 이를 위해 기도하라고 성교회의 높은 강단에서도 성스럽게 깨우쳐 오던 수십 년이니 넉넉히 동서남북에 퍼지고 하늘에도 상달되었겠지요 그리하여 오늘은 그밖의 사람들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굶주리거나 병들지 않았으며 감옥에 갇히.. 읽고 싶은 시 2018.05.23
봄날 같은 사람 / 이해인 힘들 때일수록 기다려지는봄날 같은 사람 멀리 있으면서도 조용히 다가와분위기를 따스하게 만드는 사람 소리를 내어도 어찌나 정겹게 들리는지자꾸만 가까이 있고 싶은 사람 솔솔 부는 봄바람같이자꾸만 분위기를 띄워주는 사람 햇살이 쬐이는 담 밑에서싱그럽게 돋아나는 봄나물 같은 사람 온통 노랑으로 뒤덮은 개나리같이마음을 울렁이게 하는 사람 조용한 산을 붉게 물들인 진달래처럼꼬-옥 또 보고 싶은 사람 어두운 달밤에도 기죽지 않고꿋꿋이 자기를 보듬는 목련 같은 사람 봄소식들을 무수히 전해주는 봄 들녁처럼넉넉함을 주는 싱그러운 사람 너무나 따스하기에,너무나 정겹기에,너무나 든든하기에,언제나 힘이 되는 사람 그 사람은 봄날 같은 사람입니다. 읽고 싶은 시 2018.05.17
겸손 / 이해인 겸 손 자기 도취의 부패를 막아주는 겸손은 하얀 소금 욕심을 버릴 수록 숨어서도 빛나는 눈부신 소금이네 그래 사랑하면 됐지 바보가 되면 어때 결 고운 소금으로 아침마다 마음을 닦고 또 하루의 길을 가네 짜디짠 기도를 바치네 무시당해도 묵묵하고 부서져도 두렵지 않은 겸손은 하.. 읽고 싶은 시 2018.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