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시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 유치환

윤소천 2017. 12. 4. 19:51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고독은 욕되지 않으나

견디는 이의 값진 영광.


겨울의 숲으로 오니

그토록 요조(窈窕)피던 빛갈도

설레이던 몸짓들도

깡그리 거두어간 기술사(奇術師)의 모자.


앙상한 공허만이

먼 한천(寒天) 끝까지 잇닿아 있어

 차라리

마음 고독한 자의 거닐기에 좋아라.


진실로 참되고 옳음이

죽어지고 숨어야 하는 이 계절(季節)엔

나의 뜨거운 노래는

여기 언 땅에 깊이 묻으리.


아아, 나의 이름은  나의 노래

목숨보다 귀하고 높은 것.


마침 비굴한 목숨은

눈을 에이고, 땅바닥 옥에

무쇠 연지를 돌릴지라도

나의 노래는

비도(非道)를 치레하기에 앗기지는 않으리라.


들어보라

이 거짓의 거리에서 숨결쳐 오는


뭇 구호외 빈 찬양의 헛한 울림을

모두가 영혼을 팔아 예복을 입고

소리 맞춰 목청 뽑을지라도


여기 진실(眞實)은 고독히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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