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시 743

플라타너스 / 김현승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타나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너는 사모할 줄을 모르나 플라타너스 너는 네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늘인다. 먼 길에 오를 제 홀로 되어 외로울 제 플라타너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이제, 너의 뿌리 깊이 나의 영혼을 불어 놓고 가도 좋으련만 플라타너스 나는 너와 함께 신이 아니다 ! 수고로운 우리의 길이 다하는 어느 날 플라타너스 너를 맞아 줄 검은 흙이 먼 곳에 따로이 있느냐 ? 나는 오직 너를 지켜 네 이웃이 되고 싶을 뿐 그 곳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창이 열린 길이다.

읽고 싶은 시 2021.08.30

한 송이 수련으로 / 이해인

내가 꿈을 긷는 당신의 연못에 하얗게 떠다니는 한송이 수련으로 살게 하소서 겹겹이 쌓인 평생의 그리움 물 위에 풀어 놓고 그래도 목말라 물을 마시는 하루 도도한 사랑의 불길조차 담담히 다스리며 떠다니는 당신의 꽃으로 살게 하소서 밤마다 별을 안고 합장하는 물빛의 염원 단 하나의 영롱한 기도를 어둠의 심연에서 건져내게 하소서 나를 위해 순간마다 연못을 펼치는 당신 그 푸른 물 위에 말없이 떠다니는 한송이 수련으로 살게 하소서.

읽고 싶은 시 2021.08.17

오늘 쓰는 편지 - 나의 멘토에게 / 천양희

순간을 기억하지 않고 하루를 기억하겠습니다 꽃을 보고 슬픔을 극복하겠습니다 영혼의 주름살을 늘리지 않겠습니다 우울이 우물처럼 깊다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가장 슬픈 날 웃을 수 있는 용기를 배우겠습니다 혼자 사는 자유는 비장한 자유라고 떠들지 않겠습니다 살기 힘들다고 혼자 아우성치지 않겠습니다 무인도에 가서 살겠다고 거들먹거리지 않겠습니다 술 마시고 우는 버릇 고치겠습니다 무지막지하게 울지는 않겠습니다 낡았다고 대놓고 말하는 젊은 것들 당장 따끔하게 침놓겠습니다 그러면서 나이 먹는 것 속상해 하지 않겠습니다 나를 긁어 부스럼 만들지 않겠습니다 결벽과 완벽을 꾀하지 않겠습니다 병에 결코 굴복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하루를 생의 전부인 듯 살겠습니다 더 실패하겠습니다

읽고 싶은 시 2021.08.10

7월의 시 / 이해인

7월은 나에게 치자꽃 향기를 들고 옵니다 하얗게 피었다가 질 때는 조용히 노랗게 떨어지는 꽃 꽃이 지면서도 울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무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는 것일 테지요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 내가 모든 사람들을 꽃을 만나듯이 대할 수 있다면 그가 지닌 향기를 처음 발견한 나의 기쁨을 되새기며 설레일 수 있다면 어쩌면 마지막으로 그 향기를 맡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조금 더 사랑할 수 있다면 우리 삶 자체가 하나의 꽃밭이 될 테지요

읽고 싶은 시 2021.07.19

파도는 / 오세영

간단없이 밀려드는 파도는 해안에 부딪혀 스러짐이 좋은 것이다. 아무 미련없이 산산히 무너져 제자리로 돌아가는 최후가 좋은 것이다. 파도는 해안에 부딪혀 흰 포말로 돌아감이 좋은 것이다. 그를 위해 소중히 지켜온 자신이 지닌 모든 것들을 후회 없이 갖다 바치는 그 최선이 좋은 것이다. 파도는 해안에 부딪혀 고고하게 부르짖는 외침이 좋은 것이다. 오랜 세월 가슴에 품었던 한마디 말을 확실히 고백할 수 있는 그 결단의 순간이 좋은 것이다. 아, 간단없이 밀려드는 파도는 거친 대양을 넘어서, 사나운 해협을 넘어서 드디어 해안에 도달하는 그 행적이 좋은 것이다. 스러져 수평으로 돌아가는 그 한생이 좋은 것이다.

읽고 싶은 시 2021.07.11

그 사람을 만나고 싶다 / 롱 펠로우

항상 푸른 잎새로 살아가는 사람을 오늘 만나고 싶다. 언제 보아도 언제나 바람으로 스쳐 만나도 마음이 따뜻한 사람 밤하늘의 별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온갖 유혹과 폭력 앞에서도 흔들림 없이 언제나 제 갈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의연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 언제나 마음을 하늘로 열고 사는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 모든 삶의 굴레 속에서도 비굴하지 않고 언제나 화해와 평화스런 얼굴로 살아가는 그런 세상의 사람을 만나고 싶다.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서 나도 그런 아름다운 마음으로 살고 싶다. 아침햇살에 투명한 이슬로 반짝이는 사람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온화한 미소로 답해주는 마음이 편안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 결코 화려하지도 투박하지도 않으면서 소박한 삶의 모습으로 오늘 제 삶의 갈 길을 묵..

읽고 싶은 시 2021.06.29

마지막 공부 / 홍윤숙

무거운 몸 함께 갈 수 없어 자리에 눕혀 놓고 마음 홀로 문을 나서면 동서남북 캄캄한 밤 길도 없는 하늘에 별 하나 뜰까 어린 왕자사는 별은 어디쯤일까 몸을 떠난 혼은 그때 어떤 마음으로 어느 산굽이 돌며 지척일까 한 생애 무거운 살 벗어놓고 고통의 뼈도 내려놓고 가볍게 가볍게 깃털 하나로 약속된 시간 지체 없이 돌아가는 귀향의 길 마침내 알리라 나를 세상에 보내신 분의 뜻을 그리고 눈뜨고 귀 열리리라 삶은 끝없이 꾸는 꿈이고 죽음은 비로소 깨어나는 현실임을 그날을 위해 날마다 은사시나무 가지 끝에 부는 바람 가슴으로 새기며 남모르는 마지막 공부에 밤이 깊다

읽고 싶은 시 2021.06.21

6 월 / 황금찬

6월은 녹색 분말을 뿌리며 하늘 날개를 타고 왔느니 맑은 아침 뜰 앞에 날아와 앉은 산새 한 마리 낭랑한 목청이 신록에 젖엇다 허공으로 날개 치듯 뿜어 올리는 분수 풀잎에 맺힌 물방울에서도 6월의 하늘을 본다 신록은 꽃보다 아름다워라 마음에 하늘을 담고 푸름의 파도를 걷는다 창을 열면 6월은 액자 속의 그림이 되어 벽 저만한 위치에 바람 없이 걸려 있다 지금 이 하늘에 6월이 가져온 한 폭의 풍경화를 나는 이만한 거리에서 바라보고 있다

읽고 싶은 시 2021.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