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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인생은 / 헤르만 헤세

때때로 강렬한 빛을 피우며인생은 즐겁게 반짝거린다.그리고 웃으며 묻지도 않는다.괴로워하는 사람들을, 멸망하는 사람들을. 그러나 나의 마음은언제나 그들과 함께 있다.괴로움을 숨기고, 울기 위하여그리움이 저녁에 방으로 숨어드는 괴로움에 얽혀 갈피를 못 잡는많은 사람들을 나는 안다.그들의 영혼을 형제라고 부르고반가이 나를 맞아 들인다. 젖은 손 위에 엎드려밤마다 우는 사람들을 나는 안다.그들은 캄캄한 벽이 보일뿐빛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암흑과 근심으로 하여훈훈한 사랑의 빛을남 몰래 지니고 있는 것을그들은 모르고 헤매이고 있다.

읽고 싶은 시 2025.03.27

백자 파편 / 최은정

채소밭을 일구다가 백자 파편이 눈에 띄어 한두 개씩 모은것이 큰 바구니에 가득 찼다. 산성 밑의 이곳이 옛날 집터 자리인지 기와 조각도 잡힌다. 대숲이나 풀숲, 논둑, 물 흐른 도랑에도 파편은 엎드려 있다. 전에도 절터에서 가끔 백자 파편을 보아왔지만 그냥 지나쳤는데 요사이는 그 파편들의 빛깔에 이끌리어 모으기 시작했다.은은한 빛깔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굽마다 형태가 달라서 술병인지 접시인지 혹은 막그릇인지를 짐작케 한다. 파편 한 조각에서도 연꽃처럼 달처럼 그 맛이 다르게 느껴진다. 혹은 쑥떡같고, 바보 같고, 멍텅구리 같게도 느껴진다. 그런데 그 맛이 날이갈수록 담담하면서 은은히 다가와 마치 천 년 전의 옛사람을 보는 듯 순수한 정감에 빠져든다.   백자의 매력은 소박하다는데 있다. 평범..

춘분 연가 / 이해인

밤의 길이 낮의 길이똑같은 오늘​흰 구름 닮은 기쁨이뽀얗게 피어오르네​봄 꽃들은 조심스레 웃고봄을 반기는 어린 새들은가만히 목소리를 가다듬고​그대를 향한 나의 사랑도밤낮이 똑같은 축복이 되기를​이웃 향한 나의 우정도일을 향한 나의 열정도밤낮이 똑같을 수 있기를​나의 인품도 조금씩더 둥글어져서​일 년 내내일생 내내똑같을 수 있기를기도해 보는 오늘!​바람이 차갑게 불어와도마음엔 따스함이 스며드는춘분의 축복이여 [출처] 춘분 연가 -이해인 / 작성자 소천의 샘터

카테고리 없음 2025.03.20

졸업 / 미츠야마

어느 화창한 봄날이었지짙은 라일락 향기를 뒤로하고우리는 서로에게작별의 말을 건넸다인연이 있으면 다시 만나자참으로 무거운 말인데도그때는 가볍게 흘려버렸다설렘을 품은 가슴으로낯선 도시의 로망을 좇아앞만 바라보고 달려왔다그때, 꽃동산처럼 보이던삶의 평원을봄날의 향기를 추억하며걸어가고 있다모퉁이를 돌아서면 집이다가로등 불빛에길게 늘어진 그림자가오늘 밤도함께 걸어주고 있다삶의 훈장이라는 것은 없다묵직한 발걸음 소리가시간의 대답처럼메아리치고 있다출처 : 문화앤피플(https://www.cnpnews.co.kr)

읽고 싶은 시 2025.03.16

가슴만 남은 솟대, 책 머리에 / 윤소천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랑은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새로운 길을 열어준다. 우리는 이 사랑의 힘으로 모든 어려움과 죽음까지도 이겨낼 수 있다. 지나온 길 돌아보면, 꿈결처럼 아득해 아직도 가슴이 먹먹해 온다. 서리맞아 희끗한 머리카락, 어느새 반생을 훌쩍 넘어 종심從心에 서 있다. 사유思惟에 눈뜨던 시절, 무지와 오욕의 늪을 헤매던 여름 골짜기, 어두운 밤길 별빛만 바라보고 숨이 턱에 차 걷던 고갯길들, 늦가을 무서리에자지러진 산마루는 바람마저 드세었다.그리고 한겨울 눈 내리고 내려, 잠 속에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는 유년의 기억마저 잊게 했다.  먼 길 돌아와, 이제 봄이 오는 길목에 바람 잔 들길, 자연에 몸을 맡기고 침묵의 겨울을 지나면, 나도 모르게 개안開眼한 내가 봄의길목에 서 있다.  내 책상 위에..

소천의 수필 2025.03.11

화광동진(和光同塵)의 무등산(無等山) / 윤소천

눈 쌓인 무등산無等山바람 잔 산정山頂 성스러운 설봉雪峯! 선정禪定의 정경情景이여!​천왕봉 원효봉 서석대 입석대안고 선 무등無等어머님 품처럼 깊고 포근하다무등無等의 무애無㝵를 넘어한길로 맑게 트인 하늘저녁 노을이 곱다 지난 가을 산마루무서리에 자지러진 나목裸木차가운 눈은 내리고 내리고꽃샘추위에 유년의 기억기다림마저 잊은 봄​먼 길 돌아와무상無常을 넘어서 서이제 바람 잔 들녘찬연粲然한 햇살에눈부시어 눈 비비며맞는 새봄 화엄華嚴 열리는화광동진和光同塵의 새 아침우리부활復活의 화관花冠 쓰고사랑으로 피어나자.

읽고 싶은 시 2025.03.10

서로 사랑한다는 것 / 이정하

​당신은 아는가그를 위하여 기도할 각오없이 사랑한다는 것은 애당초 잘못된 시작이라는 것을 ​당신은 아는가이 컴컴한 어둠속에내가 그냥 있겠다는 것은내 너를 안고 그 모두를 기억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당신은 아는가상처받기 위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사랑하기 위해 상처 받는다는 것을​당신은 아는가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한 쪽이 다른 쪽을자신이 색깔로 물들여 버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당신을 아는가그리하여 사랑은 자기 것을 온전히 줌으로써비워지는게 아니라 도리어 완성된다는 것을

읽고 싶은 시 2025.03.10

3월로 건너가는 길목에서 / 박목월

2월에서3월로 건너가는 바람결에는싱그러운 미나리 냄새가 풍긴다해외로 나간 친구의체온이 느껴진다​참으로2월에서 3월로 건너가는골목길에는손만 대면 모든 사업이다 이루어질 것만 같다​동, 서, 남,북으로틔어 있는 골목마다수국색 공기가 술렁거리고뜻하지 않게 반가운 친구를다음 골목에서만날 것만 같다​나도 모르게 약간걸음걸이가 빨라지는 어제 오늘어디서나분홍빛 발을 아장거리며내 앞을 걸어가는비둘기를 만나게 된다​ㅡ무슨 일을 하고 싶다ㅡ엄청나고도 착한 일을 하고 싶다ㅡ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2월에서3월로 건너가는 바람 속에는끊임없이 종소리가 울려오고나의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아난다희고도 큼직한 날개가양 겨드랑이에 한 개씩 돋아난다

읽고 싶은 시 2025.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