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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늘 / 구 상

오늘도 신비의 샘인 하루를 맞는다.이 하루는 저 강물의 한 방울이어느 산골짝 옹달샘에 이어져 있고아득한 푸른 바다에 이어져 있듯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다.​이렇듯 나의 오늘은 영원 속에바로 시방 나는 그 영원을 살고 있다.그래서 나는 죽고나서 부터가 아니라오늘서 부터 영원을 살아야 하고영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마음이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한다.마음을 비운 삶을 살아야 한다. [출처] 오늘/구상|작성자 소천의 샘터

읽고 싶은 시 2024.10.25

겨울 이야기 / 윤소천

​ 겨울의 뜰은 황량하고 을씨년스럽다. 추위를 견디며 나와 함께 겨울을 나는 나무들,지난 늦가을 한 잎 두 잎 잎을 떨쳐내더니 이제는 차가운 하늘 아래 알몸으로 매서운 북풍과눈보라를 맞으며 추위를 이겨내고 있다. 이를 보고 있으면 다가올 새봄을 기다리는 나무의 인내와 견고함이 느껴진다.​나무 가까이 다가가 보면 겨울잠을 자는 나무들이 어느새 새봄을 준비하고 있다.단풍은 벌써 떨켜에 틔울 싹을 마련하고 있고, 매화는 어느새 꽃눈을 틔우고 있다. 그리고 붓끝 같은 목련의 봉오리는 하늘을 향해있다. 단풍의 연두색 여린 잎, 매화의 은은한 향기, 목련꽃의 우아한 모습들을 그려보면새봄이 기다진다.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고 있는 큰애가 며칠 전 제주 올레길 트레킹을 하고 돌아왔다.학창시절 가족여행을 다녀온 후로 여..

소천의 수필 2024.10.24

물염(勿染)의 시 / 나종영

​시인아시를 쓰려거든시를 그대가 쓴다고 생각하지 마시라​시는 밤하늘의 별빛과 들판의 바람 소리강가의 돌멩이와산 너머 구름의 말을 빌린 것이다​시인아 시를 만들지 마시라시는 한줄기 아침 햇살, 붉은 저녁노을시린 달빛의 언어가어린 풀벌레와 짐승의 피울음 소리를 넘어가까스로 오는 것이다​시는 어두워지는 숲속날아가는 산새들이 불러주는 상흔(傷痕)의 노래나지막한 그 숨결 그 품 안에서살아오는 것이다 [출처] 물염(勿染)의 시/나종영  작성자 소천의 샘터

읽고 싶은 시 2024.10.24

봄이 오는 길목에서 / 윤소천

며칠 전 남쪽 바닷가에 사는 친지로부터 매화가 피었다는 봄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이곳은 춘설春雪이 밤새 내렸다. 뜰에 나가 보니 잔설이 쌓여있는 산수유 매화의 꽃눈이 또렷해져 겨울잠에서깨어나고 있었다. 사유思惟에 눈뜨던 시졀, 무서리에 자지러진 가을을 지나 눈 내린 혹한의 겨울 그리고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는 유년의 기억마저 잊게 했다. 그러나 그 고뇌와 아픔의 시간 들이 이제는 잃어버린 나를 찾는 소중한 자양분이 되었다. “작은 구름이 가볍게 하늘을 흘러간다 /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고 꽃은 풀숲에서 웃는다 /어디를 보아도 고단한 눈은 이제 /책에서 읽은 것을 잊으려 한다 / 내가 읽었던 어려운 것들은 / 모두 먼지처럼 날아가 버렸으며 / 겨울날의 환상에 불과했다 / 나의 눈은 깨끗하게 정화되어 / 새로..

수선화 水仙花 / 윤소천

봄나들이 길에 순창 김인후 선생의 훈몽재訓蒙齋를 찾았다가 옆 농원에서 귀한 수선화 몇 분을 얻어왔다. 금잔옥대金盞玉臺라 하는 거문도巨文島수선화로 내가 좋아하는수선화다.  뜰 군데군데에 심었는데 어느새 무리를 지어 피어있다. 금잔옥대는 여섯 개의 하얀꽃잎 안에 황금빛 꽃송이가 꽃 잔처럼 오똑 서 있고 향기가 있는 기품있는 수선화다. 하얀 꽃받침에 작은 금빛 꽃송이가 종 모양 같아 바람이 불면 종소리가 날 것 같다.​수선화는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도 꽃가루받이를 하지 못해 씨를 맺지 못한다.꽃이 지고 봄이 지나면 자취 없이 사라져 버리고, 한해 내내 땅속에서 동면하며 뿌리를 키워 번식한다. 그리고 이듬해 수선화는 눈 속에서 꽃을 피워 봄을 알린다. 수선화를 상징하는 꽃말은 자존심과 자기애 그리고 외로움과 고결..

소천의 수필 2024.10.04

9 월 / 헤르만 헤세

우수(憂愁) 어린 정원피어 있는 꽃에 싸느다란 비가 내린다.그러자 여름은 몸을 부르르 떨면서말없이 자신의 임종을 맞이한다. 황금빛으로 물든 나뭇잎이 펄럭펄럭높다란 아카시아 나무로부터 떨어진다.그러자 여름은 깜짝 놀라 힘없는 미소를꿈이 사라지는 마당에다 보낸다. 이미 그 전부터 장미꽃 옆에서다소곳이 휴식을 기다리고 있던 여름은이윽고 천천히 그 커다란피곤에 지친 눈을 감는다.

읽고 싶은 시 2024.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