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시 759

졸업 / 미츠야마

어느 화창한 봄날이었지짙은 라일락 향기를 뒤로하고우리는 서로에게작별의 말을 건넸다인연이 있으면 다시 만나자참으로 무거운 말인데도그때는 가볍게 흘려버렸다설렘을 품은 가슴으로낯선 도시의 로망을 좇아앞만 바라보고 달려왔다그때, 꽃동산처럼 보이던삶의 평원을봄날의 향기를 추억하며걸어가고 있다모퉁이를 돌아서면 집이다가로등 불빛에길게 늘어진 그림자가오늘 밤도함께 걸어주고 있다삶의 훈장이라는 것은 없다묵직한 발걸음 소리가시간의 대답처럼메아리치고 있다출처 : 문화앤피플(https://www.cnpnews.co.kr)

읽고 싶은 시 2025.03.16

화광동진(和光同塵)의 무등산(無等山) / 윤소천

눈 쌓인 무등산無等山바람 잔 산정山頂 성스러운 설봉雪峯! 선정禪定의 정경情景이여!​천왕봉 원효봉 서석대 입석대안고 선 무등無等어머님 품처럼 깊고 포근하다무등無等의 무애無㝵를 넘어한길로 맑게 트인 하늘저녁 노을이 곱다 지난 가을 산마루무서리에 자지러진 나목裸木차가운 눈은 내리고 내리고꽃샘추위에 유년의 기억기다림마저 잊은 봄​먼 길 돌아와무상無常을 넘어서 서이제 바람 잔 들녘찬연粲然한 햇살에눈부시어 눈 비비며맞는 새봄 화엄華嚴 열리는화광동진和光同塵의 새 아침우리부활復活의 화관花冠 쓰고사랑으로 피어나자.

읽고 싶은 시 2025.03.10

서로 사랑한다는 것 / 이정하

​당신은 아는가그를 위하여 기도할 각오없이 사랑한다는 것은 애당초 잘못된 시작이라는 것을 ​당신은 아는가이 컴컴한 어둠속에내가 그냥 있겠다는 것은내 너를 안고 그 모두를 기억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당신은 아는가상처받기 위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사랑하기 위해 상처 받는다는 것을​당신은 아는가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한 쪽이 다른 쪽을자신이 색깔로 물들여 버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당신을 아는가그리하여 사랑은 자기 것을 온전히 줌으로써비워지는게 아니라 도리어 완성된다는 것을

읽고 싶은 시 2025.03.10

3월로 건너가는 길목에서 / 박목월

2월에서3월로 건너가는 바람결에는싱그러운 미나리 냄새가 풍긴다해외로 나간 친구의체온이 느껴진다​참으로2월에서 3월로 건너가는골목길에는손만 대면 모든 사업이다 이루어질 것만 같다​동, 서, 남,북으로틔어 있는 골목마다수국색 공기가 술렁거리고뜻하지 않게 반가운 친구를다음 골목에서만날 것만 같다​나도 모르게 약간걸음걸이가 빨라지는 어제 오늘어디서나분홍빛 발을 아장거리며내 앞을 걸어가는비둘기를 만나게 된다​ㅡ무슨 일을 하고 싶다ㅡ엄청나고도 착한 일을 하고 싶다ㅡ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2월에서3월로 건너가는 바람 속에는끊임없이 종소리가 울려오고나의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아난다희고도 큼직한 날개가양 겨드랑이에 한 개씩 돋아난다

읽고 싶은 시 2025.02.28

봄이 오는 길목에서 / 이해인

하얀 눈 밑에서도 푸른 보리가 자라듯 삶의 온갖 아픔 속에서도 내 마음엔 조금씩 푸른 보리가 자라고 있었구나 꽃을 피우고 싶어 온몸이 가려운 매화 가지에도 아침부터 우리집 뜰 안을 서성이는 까치의 가벼운 발결움과 긴 꼬리에도 봄이 움직이고 있구나 아직 잔설이 녹지 않은 내 마음의 바위 틈에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일어서는 봄과 함께 내가 일어서는 봄 아침 내가 사는 세상과 내가 보는 사람들이 모두 새롭고 소중하여 고마움의 꽃망울이 터지는 봄 봄은 겨울에도 숨어서 나를 키우고 있었구나

읽고 싶은 시 2025.02.25

나는 알고 또한 믿고 있다 / 구 상​

​이 밑도 끝도 없는욕망과 갈증의 수렁에서빠져나올 수 없음을나는 알고 있다.​이 밑도 끝도 없는고뇌와 고통의 멍에에서벗어날 수 없음을나는 알고 있다.​이 밑도 끝도 없는불안과 허망의 잔을피할 수 없음을나는 알고 있다.​그러나 나는 또한 믿고 있다.​이 욕망과 고통의 허망 속에인간 구원의 신령한 손길이감추어져 있음을,그리고 내가 그 어느 날그 꿈의 동산 속에 들어영원한 안식을 누릴 것을​나는 또한 믿고 있다.

읽고 싶은 시 2025.02.24

봄길 / 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길이 끝나는 곳에서도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사랑으로 남아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읽고 싶은 시 2025.02.17

개안(開眼) / 박목월

나이 60에 겨우꽃을 꽃으로 볼 수 있는눈이 열렸다.神이 지으신 오묘한그것을 그것으로볼 수 있는흐리지 않은 눈어설픈 나의 주관적인 감정으로채색하지 않고있는 그대로의 꽃불꽃을 불꽃으로 볼 수 있는눈이 열렸다. 세상은 너무나 아름답고충만하고 풍부하다.神이 지으신 있는 그것을 그대로 볼 수 있는至福한 눈이제 내가 무엇을 노래하랴.神의 옆자리로 살며시다가가아름답습니다.감탄할 뿐神이 빚은 술잔에축배의 술을 따를 뿐.

읽고 싶은 시 2025.02.17

성숙한 사랑을 위해 / 가토 다이조

​노력하지 않고서 사랑받을 수는 있어도노력하지 않고서 사랑할 수는 없네.​사랑한다는 것은 삶의 무거운 짐을 정면에서 떠맡는 것.​무엇인가에 의지하고 싶다,무엇인가의 보호를 받고 싶다,무엇인가를 붙잡고 싶다,이러한 것들을 하나하나 내던져 버리고 홀로 굳건히 서기 위한 노력.​자기 중심으로부터 벗어나지 않고선 그 누군가를 사랑할 수가 없네.​사랑하려고 애쓰는 노력은자기 중심적 생각과 행동으로 부터 한 걸음씩 벗어나는 일.역경에 무너지지 않고고통에 쓰러지지 않고나의 슬픔을 뛰어넘어 환한 웃음으로 그를 마주할 수 있어야 하는 것.그리하여 그 사랑으로 더욱더 성숙해지는 일.​노력하지 않고서 사랑받을 수는 있어도 노력하지 않고서 사랑할 수는 없네.

읽고 싶은 시 2025.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