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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송이 수련 위에 부는 바람처럼 / 손광성

수련을 가꾼 지 여남은 해. 엄지손가락만한 뿌리를 처음 얻어 심었을 때는, 이놈이 언제 자라서 꽃을 피우나 싶어 노상 조바심이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자꾸 불어나서 이웃과 친지들에게 나누어 주고도 지금 내 물둠벙은 수련으로 넘친다. 나누어 줄수록 커지는 것은 사랑만이 아닌 것 같다. 게다가 가져간 분들로부터 첫 꽃이 피었다는 전화라도 오는 날은 마치 시집간 딸의 득남 소식이 이러려니 싶을 만큼 내 마음은 기쁨으로 넘친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 때도 있다. 말려서 죽이지 않으면 얼려서 죽인다. 그런 때는 소박을 맞은 딸을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난을 탐내는 사람은 많아도 제대로 가꾸는 사람은 드물더라는 가람 선생의 말씀이 그 때마다 귀에 새로웠다. 수련은 유월과 팔월 사이에 핀다. 맑은 수면 위에..

하나의 풍경 / 박연구

찌는 듯이 더운 날씨에 아이 할아버지는 웬 절구통을 사오셨다. 메주콩도 찧어야 할 것이고 언제부터 벼르던 차에 좋은 돌절구통을 만났기에 들여온 거라 말씀하시기에 자세히 보니까 가짜 돌절구였다. 이 무거운 걸 버스 종점에서부터 메고 왔다는 인부에게 절구통값 오천 오백원을 얼른 내주라고 하셨을 때도 나는 차마 아버지께서 속으신 것이니 대금을 치르지 못하겠다는 말씀을 드릴 수가 없었다. 땀으로 뒤범벅이 된 인부의 얼굴보다도 그처럼 좋아하시는 아버지에게 사실대로 알려 드린다는 것이 죄송스러운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아니 계시니까 아버지가 시어머니 몫의 배려(配慮)까지 하시었다. 김장철이 임박하면 비싸니까 고추나 마늘을 미리미리 사두라는 등 자상하신 데가 있었다. 절구통을 보니까 시골집의 나무 절구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