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수필

하나의 풍경 / 박연구

윤소천 2014. 5. 27. 06:28

 

 

 

 

 찌는 듯이 더운 날씨에 아이 할아버지는 웬 절구통을

사오셨다. 메주콩도 찧어야 할 것이고 언제부터 벼르던 차에

좋은 돌절구통을 만났기에 들여온 거라 말씀하시기에

자세히 보니까 가짜 돌절구였다. 이 무거운 걸 버스 종점에서부터

메고 왔다는 인부에게 절구통값 오천 오백원을 얼른 내주라고

 하셨을 때도 나는 차마 아버지께서 속으신 것이니 대금을 치르지

못하겠다는 말씀을 드릴 수가 없었다. 땀으로 뒤범벅이 된 인부의

얼굴보다도 그처럼 좋아하시는 아버지에게 사실대로 알려

드린다는 것이 죄송스러운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아니 계시니까 아버지가 시어머니 몫의 배려(配慮)까지

하시었다. 김장철이 임박하면 비싸니까 고추나 마늘을 미리미리 사두라는

등 자상하신 데가 있었다. 절구통을 보니까 시골집의 나무 절구통이

생각났다. 볼품은 없었으나 어머니의 체취가 배인 것이라서 내 마음만

같아서는 이사 올 때 가져 오고 싶었던 물건이다. 아버지가 오신

절구통은 보기는 좋게 생겼지만 사실은 시멘트로 빚어 만든 거였다.

쑥돌 색깔이 누가 보아도 의심할 수 없는 돌절구가 분명한데......

설명을 듣고 난 집사람은 어쩌면 그렇게도 부자(父子)가

닮았느냐고 핀잔이다.

 

 지난 초여름의 일이다. 대구(大邱)에서 정국진(鄭國鎭) 선생이

올라 오셨을 때 우리 동네 초입에 있는 화원을 들러 난(蘭)을 구경만

하고 나오자니 미안해서 모란(牧丹) 한 떨기를 샀다. 집의 화단에

심었더니 이걸 보신 아버지는 모란이 아니라 작약(芍藥)이라 하시면서

너무 비싸게 사왔다고 야단을 치시던 생각이 나서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때 꽃을 파는 아가씨가 분명 모란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모란과 작약이 비슷하기는 하지만 엄연히 풀과

나무의 구별이 있음에도 그걸 미처 생각하지도 않고 그 아가씨의 말만

믿고 샀던 내가 어리숙한 사람이 되고 말았으나  어느 날 아침

탐스럽게 피운 꽃송이를 보고서 비싸게 샀다는 생각이 싹 가셔

버렸던 거다. 어쩌면 아가씨의 말도 전적으로 틀린 거는 아닐는지

모르겠다. 모란(牧丹)을 목작약(木芍藥)이라고 일컫고도 보면 말이다.

다만 내게는 꽃이 주는 즐거움이 중요할 따름이다.

 

 우리집 작은 마당에는 담 밑으로 제법 여러 가지의 꽃나무와

화초들이 심어진 화단이 있는데, 그 한켠에 아버지가 사오신 절구통이

놓이니 한결 시골스러운 풍경의 조화를 이루게 되었다. 진짜 돌로된

절구통은 꽤나 비쌀 것이다. 내 형편에 그걸 사기는 어렵겠고 시멘트로

빚은 것이지만 미상불 없는 것보다야 낫다고 생각되었다.

 시골과는 달라서 절구통 쓸 일이 별로 없으니만큼 진짜 돌이 아닌들

쉬 깨질 염려도 없다. 말하자면 실용성보다도 하나의

장식용으로 존재하면 되는 것이다.

 

 어쩌다 절구통 사용할 일이 생겨서 아내가 절구질을 하면

그 옛날의 어머니가 시골집에서 절구질을 하시던 모습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아니면 또 막내 딸아이가 소꿉놀이를 한다고 플라스틱

절구통에 절구질 하는 시늉을 내는 귀여운 모습을 연상하게도 될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그래도 아버지에게 아버지가 사 오신 절구통은

 돌이 아닌 가짜 절구라고 일러 드리고도 싶었다.계속해서 물건을 속아

사오시면 어떻게 하나 싶은 노파심(?) 때문이다. 결국 아내와 나는

이 문제를 다시는 거론 않기로 약속을 하였다. 아버지가 사시면 얼마나

사실 것이며 속아 사오신들 그 액면이 얼마나 될 것인가. 다만

연만하셔서도 자식의 생활에 마음 써 주시는 어버이의

사랑이 그지없이 소중스럽다는 생각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