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시 743

삶은 섬이다 / 칼린 지브란

삶은 고독의 대양 위에 떠있는 섬 믿음은 바위가 되고, 꿈은 나무로 자라는, 고독 속에 꽃이 피고, 목마른 냇물이 흐르고 오 ! 사람들아, 삶은 섬이다 뭍으로부터 멀어져 있고 다른 모든 섬들과도 떨어져 있는 섬이다 그대의 기슭을 떠나는 배가 아무리 많다 하여도 그대 해안에 기항하는 배들이 그렇게 많다 하여도 그대는 단지 외로운 섬 하나로 남아 있나니 고독의 운명 속에 헤매이면서 오, 누가 그대를 알 것인가 그대와 마음을 나눌 사람 그대를 이해해 줄 사람 과연 누가 있겠는가

읽고 싶은 시 2020.08.25

당신 곁에 / 타고르

하던 일 모두 뒤로 미루고 잠시 당신 곁에 앉아 있고 싶습니다. 잠시 동안 당신을 못 보아도 마음에는 안식 이미 사라져 버리고 고뇌의 바다에서 내 하는 일 모두 끝없는 번민이 되고 맙니다. 불만스러운 낮 여름이 한숨 쉬며 오늘 창가에 와 머물러 있습니다. 꽃 핀 나무가지 사이사이에서 꿀벌들이 잉잉 노래하고 있습니다. 임이여 어서 당신과 마주앉아 묵숨 바칠 노래를 부르렵니다. 신비스러운 침묵 속에 가득 싸인 이 한가로운 시간 속에서.

읽고 싶은 시 2020.08.12

내가 사랑하는 사람 / 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의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읽고 싶은 시 2020.08.05

생의 계단 / 헤르만 헷세

모든 꽃이 시들듯이 청춘이 나이에 굴복하듯이 생의 모든 과정과 지혜와 깨달음도 그때그때 피었다 지는 꽃처럼 여원하진 않으리. 삶이 부르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음은 슬퍼하지않고 새로운 문으로 걸어갈 수 있도록 이별과 재출발의 각오를 해야만 한다. 무릇 모든 출발에는 신비한 힘이 있어 그것이 우리를 지키고 살아가는 데 도움을 준다. 우리는 공간들을 하나씩 지나가야 한다. 어느 장소에서도 고향에서와 같은 집착을 가져선 안된다. 우주의 정신은 우리를 붙잡아두거나 구속하지 않고 우리를 한 단계씩 높이며 넓히려 한다. 여행을 떠날 각오가 되어있는 자만이 자기를 묶고 있는 속박에서 벗어나리라. 그러면 임종의 순간에도 여전히 새로운 공간을 향해 즐겁게 출발하리라. 우리를 부르는 생의 외침은 결코 그치는 일이 없으리라..

읽고 싶은 시 2020.07.22

막동리 소묘 / 나태주

막동리 소묘 1 아스라이 청보리 푸른 숨소리 스민 청자의 하늘, 눈물 고인 눈으로 바라보지 마셔요. 눈물 고인 눈으로 바라보지 마셔요. 보리밭 이랑 이랑마다 솟는 종다리. 2 얼굴 붉힌 비둘기 발목같이 발목같이 하늘로 뽑아올린 복숭아나무 새순들. 하늘로 팔을 벌린 봄 과원의 말씀들. 그같이 잠든 여자, 고운 눈썹 잠든 여자. 3 내버려두라, 햇볕 드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때가 되면 사과나무에 사과꽃 피고 누이의 앵두나무에 누이의 앵두가 익듯 네 가슴의 포도는 단물이 들 대로 들을 것이다. 4 모음으로 짜개지는 옥빛 하늘의 틈서리로 우우우우, 사랑의 내력(來歷) 보 터져오는 솔바람 소리. 제가 지껄인 소리 제가 들으려고 오오오오, 입을 벌리는 실개천 개울물 소리. 5 겨우내 비워둔 나의 술잔에 밤새워 조..

읽고 싶은 시 2020.07.12

나 뭇 결 / 나태주

나 뭇 결 운문사 만우당 스님들 조강하게 드나드시는 쪽마루 가끔씩 들를 때마다 더욱 고와지고 또렷해지는 마룻바닥의 나뭇결 스님들 발길이 스치고 스님들 걸레질에 닦여서 서슬 푸른 향기라도 머금을 듯 뼈무늬라도 일어설 듯 가장 정갈한 아침 햇살이 말려주고 가장 조용한 저녁 별빛이 쓰다듬어 주어 더욱 선명해지고 고와진 마룻바닥의 나뭇결 사람도 저처럼 나이 들면서 안으로 밝아지고 고와져 선명한 마음의 무늬를 지닐 수는 없는 일일까 향내라도 은은하게 품을 수는 없는 일일까. ( 1995 )

읽고 싶은 시 2020.06.22

유월의 장미 / 이해인

유월의 장미 '하늘은 고요하고 땅은 향기롭고 마음은 뜨겁다.' 6월의 장미가 내게 말을 건네옵니다. 사소한 말로 우울할 적마다 '밝아져라' '맑아져라' 웃음을 재촉하는 장미 삶의 길에서 가장 가까운 이들이 사랑의 이름으로 무심히 찌르는 가시를 다시 가시로 지르지 말아야 부드러운 꽃잎을 피워낼 수 있다고 누구를 한번씩 용서할 적마다 싱싱한 잎사귀가 돋아난다고 6월의 넝쿨장미들이 해 아래 나를 따라오며 자꾸만 말을 건네옵니다. 사랑하는 이여 이 아름다운 장미의 계절에 내가 눈물 속에 피워 낸 기쁨 한 송이 받으시고 내내 행복하십시오.

읽고 싶은 시 2020.06.08

아버지의 나이 / 정호승

아버지의 나이 나는 이제 나무에 기댈 줄 알게 되었다 나무에 기대어 흐느껴 울 줄 알게 되었다 나무의 그림자 속으로 천천히 걸어들어가 나무의 그림자가 될 줄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왜 나무 그늘을 찾아 지게를 내려놓고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셨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 강물을 따라 흐를 줄도 알게 되었다 강물을 따라 흘러가다가 절벽을 휘감아돌 때가 가장 찬란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해질 무렵 아버지가 왜 강가에 지게를 내려놓고 종아리를 씻고 돌아와 내 이름을 한번씩 불러보셨는지 알게 되었다

읽고 싶은 시 2020.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