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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족濯足 / 황동규

휴대폰 안 터지는 곳이라면 그 어디나 살갑다. 아주 적적한 곳 늦겨울 텅 빈 강원도 골짜기도 좋지만, 알맞게 사람 냄새 풍겨 조금 덜 슴슴한 부석사 뒤편 오전梧田약수 골짜기 벌써 초여름, 산들이 날이면 날마다 더 푸른 옷 갈아입을 때 흔들어봐도 안 터지는 휴대폰 주머니에 쑤셔넣고 걷다 보면 면허증 신분증 카드 수첩 명함 휴대폰 그리고 잊어버린 교통 범칙금 고지서까지 지겹게 지니고 다닌다는 생각! 시냇가에 앉아 구두와 양말을 벗고 바지를 걷는다. 팔과 종아리에 이틀내 모기들이 수놓은 생물과 생물이 느닷없이 만나 생긴 화끈한 문신文身들! 인간의 손이 쳐서 채 완성 못 본 문신도 있다. 요만한 자국도 없이 인간이 제풀로 맺을 수 있는 것이 어디 있는가?

읽고 싶은 시 2014.04.13

부드러운 속도 / 도종환

걸음을 멈추고 회화나무 아래 앉아 있다 시간은 내게 풀잎이 이슬 젖은 몸을 말리며 천천히 일어서는 속도로 왔다가 수련이 열었던 꽃을 닫는 걸음걸이로 나를 지나가는 게 보인다 멈추니까 시간이 보인다 속도의 등에서 내려 이렇게 멈추어 있는 동안 속도는 오늘도 정해진 궤도를 거침없이 달려가고 내 다시는 궤도의 끝자리에 다다를 수 없어 많은 것을 놓치리란 예감이 든다 생활은 다시 회복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 갔더라도 언젠가는 내렸을 것이다 내리니까 비로소 내가 보인다 내리고 나니까 가까운 이들의 얼굴이 꽃으로 보이고 꽃의 숨소리가 들린다 속도가 속도를 반성하지 않은 것* 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저항으로 택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다 나도 여기서 멈추고 더 이상 진행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읽고 싶은 시 2014.04.12

침묵의 계단 / 신달자

구름들도 잠시 걸음을 멈춘 계단 위로 한 발 오르면 천 년 말들이 다 가라앉은 듯 고요 섬뜩하다 한 번은 오를 참이었다 망설이고 머뭇거리던 세상 소음들 단번에 털고 무겁게 한 발 더 오르면 벽이었던 허공이었던 거기 처음 열리는 문고리들이 지긋이 떨리며 밝은 빛을 열어 보인다 한 번은 지상의 관계를 놓아버리고 오르고 싶었던 정상 태초의 산이 태초의 강과 바다가 태어난 알몸의 몸으로 살아가는 쉿 ! 눈으로도 말하지 마 사람의 기척으로도 사라지고 마는 저 귀 멍멍한 높이에서 말의 그림자까지 완연 지우고 다시 한 발 오르면 내가 태어나기 전의 풀들 반짝이고 어디에도 열리는 문이 있어 그 문 너머 옷 입지 않은 아담과 이브도 있어

읽고 싶은 시 2014.04.10

봄의 금기사항 / 신달자

봄에는 사랑을 고백하지 마라 그저 마음 깊은 그 사람과 나란히 봄들을 바라보아라 멀리는 산 벚꽃들 은근히 꿈꾸듯 졸음에서 깨어나고 들녘마다 풀꽃들 소곤소곤 속삭이며 피어나며 하늘 땅 햇살 바람이 서로서로 손잡고 도는 봄들에 두 발 내리면 어느새 사랑은 고백하지 않아도 꽃 향에 녹아 사랑은 그의 가슴속으로 스며들리라 사랑하면 봄보다 먼저 온몸에 꽃을 피워내면서 서로 끌어안지 않고는 못 배기는 꽃술로 얽히리니 봄에는 사랑을 고백하지 마라 무겁게 말문을 닫고 영혼 깊어지는 그 사람과 나란히 서서 출렁이는 생명의 출항 파도치는 봄의 들판을 고요히 바라보기만 하라

읽고 싶은 시 2014.04.07

복수초와 수선 / 황동규

후줄근한 마음 어디에고 걸 수 없을 땐 시인 안도현이 식전食前 산책길에 내소사 뒷산에서 골라 캐어준 복수초와 수선을 걸리. 검은 비닐 봉지 속에 맥놓고 늘어져 길 밀리는 고속버스에 실려와 주인이 혼곤해 이튿날 화분에 심긴 것들. 물을 주어도 흙 위에 쓰러져 꼼짝 않더니 하루 지나니 예가 어디지 고개를 들고 그 다음날 물 줄 때는 세수까지 했다. 며칠 후 복수초 꽃은 막 지고 있고 수선 셋 중 하나엔 꽃대궁이 고개를 내밀었다. 노자老子가 와보면 치우라고 하겠지만 지금 사람에겐 그것도 꿈이라 벌 나비가 안 와도 꿈이라 살다 속이 좁아진 시인에겐 한 번 쓰러졌다 다시 깨어난 건 그 어느 것도 다 제 명命 지닌 꿈이라.

읽고 싶은 시 2014.04.04

[스크랩]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살기를.... Zen 선 禪 - `참 나`를 밝히는 음악

Zen 선 禪 - '참 나'를 밝히는 음악 1 ■ 참선 명상으로 내면의 빛을 밝게 심신수련을 하게 되면'참 나'를 바로 보게 되어, 내면의 갈등이 사라지고 풀, 물,흙, 나무, 돌멩이… 하나도 각기 보석처럼 찬란한 빛을 발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 그리하여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자유..

샘터 게시판 2014.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