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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보는 봄 / 신달자

먼 산에 잔설이 아직 녹지 않은 채 바라다보이고 소매 끝을 스치는 바람이 맵고 옹골차지만 이미 우리들 마음속에 봄은 깊이 들어와 있는 듯하다. 겨울이 지루하게 느껴졌음일까 ? 봄은 언제나 가슴 두근거리게 하며 찾아오고, 하는 확인을 거듭하게 된다. 그런 봄은 역시 깨어나고 일어서고 그래서 더욱 미래 지향적인 희망을 노래하는 것으로 우리에게 인식되어 있다. 그러나 겨울잠에서 깨어나고 앉은뱅이 풀들이 푸른 꽃대를 지켜들고 일어서는 봄의 축제 외에도 결코 제외될 수 없는 귀중한 행사가 봄 속에는 꿈틀대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가 했던 말이지만 을 줄인 말로 바라보는 일 혹은 바라보는 정신의 계절이라고 단적으로 말할 수 있다. 황량한 겨울 들판, 때로는 죽음의 들판으로 비쳐왔던 그 땅 위에 생명이 넘실거리며 초록..

마음의 날개 / 신달자

날개는 새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마음속에도 날개는 있다. 그러나 우리들 마음속 날개는 태어날 때부터 갖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마음의 날개를 부모님이나 스승 혹은 친구가 달아 주는 것도 아닐 것이다. 우리들 마음속 날개는 바로 나 자신이 다는 것이다. 이 날개는 특별한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것은 결코 아니며, 가지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누구라도 이 날개를 소유할 수 있는 그런 날개다. 그러나 이 마음의 날개는 그 마음씨나 행동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던 무조건 갖게 되는 그런 날개는 아니다. 물론 이 날개를 갖는 데는 어떤 조건이 따른다. 그 조건은 까다롭지 않다. 아니 아주 쉬운 조건이다. 첫째로는 자기를 사랑해야 한다. 자기를 아끼고 다듬는 사람이어야 한다. 둘째는 나 이외의 사람에게 순조..

늦은 꽃 / 도종환

꽃은 더디 피고 잎은 일찍 지는 산골에서 여러 해를 살았지요 길어지는 나무들의 동안거를 지켜보며 나도 묵언한채 마당이나 쓸었지요 내 이십대와 그 이후의 나무들도 늦되는 것이 얼마나 많았던지요 늦게 피는 내게 눈길 주는 이 없고 나를 알아보지 못한 채 낙화는 빨리 와 꽃잎 비에 젖어 흩어지며 서른으로 가는 가을은 하루하루가 스산한 바람이었지요 내 마음의 꽃잎들도 젖어 딩굴며 나를 견디기 힘들어했지요 이 산을 떠나는 날에도 꽃은 더디 피고 잎은 먼저 지겠지요 기다리던 세월은 더디 오고 찬란한 순간은 일찍 지평에서 사라지곤 했으니 내 남은 생의 겨울도 눈 내리고 서둘러 빙판 지겠지요 그러나 이 산에 내 그림자 없고 바람만 가득한 날에도 기억해주세요 늦게 피었어도 그 짧은 날들이 다 꽃 피는 날이 있다고 일찍 ..

읽고 싶은 시 2014.04.22

소리없는 말씀 / 신달자

아침에 일어나면 베란다 앉은 화분에 꽃 한 송이 또 피어있다 밤의 깊은 침묵이 호올로 이끌어낸 붉은 전언傳言 한마디 톡 내 이마를 때리니 꽃피는 공간에 나 서 있는 것 보인다 노래 한번 불러주지 못했는데 간밤 웅성거림 하나 없이 따뜻한 예감으로 내 가슴속에 활짝 피어올라 기우뚱하는 나를 바로 세우는 저 몸짓 연약한 그러나 당찬 말씀의 홀몸 길들이기 아침부터 나는 학습 중이다

읽고 싶은 시 2014.04.21

작아지는 발 / 신달자

새봄 새순같이 부드러워 혼자 걸 수 없었던 내 발은 처음으로 혼자 섰을 때의 환호하는 어머니의 기억을 갖고 있다 시골 흙길과 들길을 발 부르트게 다닌 개구쟁이의 기억은 내가 알고 있는 일 서서히 내 발은 자라 고무신에서 하이힐을 신으며 세상을 밟고 살아오면서 고무에서 가죽으로 내 마음도 단단해졌다 오징어 배보다 더 큰 배를 신고 싶었다 비행기같이 하늘을 나는 높은 구두를 신고 어머니를 누르던 키 큰 사람들을 놀려주고 싶었다 날쌘 파도와 바람을 가르며 장부丈夫 같은 바람을 가르며 돛으로 깃발로 휘날리고 싶었다 그러나 꿈은 높고 발은 작아 온몸에 버거운 퇴적물만 쌓여 군더더기의 살들이 무거웠을까 자꾸만 한 문수씩 줄어드는 내 발 내 몸의 은근한 양심수인가 헛된 것의 하중을 내 발이여! 내가 스스로 알고 있것다!

읽고 싶은 시 2014.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