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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이꽃 한 송이도 제 속에서 거듭납니다 / 도종환

냉이꽃 한 송이도 제 속에서 거듭납니다 제 속에서 거듭난 것들이 모여 논둑 밭둑 비로소 따뜻하게 합니다 참나무 어린 잎 하나도 제 속에서 거듭납니다 제 속에서 저를 이기고 거듭난 것들이 모여 차령산맥 밑에서 끝까지 봄이게 합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 속에서 거듭납니다 저 자신을 죽이고 다시 태어난 사람들 모여 이 세상을 아직 희망이게 합니다.

읽고 싶은 시 2014.04.19

봄 나무가 보여 주는 풍경 / 도종환

폭설에 부러진 겨울나무 가지 곁에 새 움이 돋는다. 겨우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동안 쪼글쪼글 오그라진 산수유 열매들을 매단 채 노오란 산수유꽃이 피어난다. 잎이 다 떨어져 나가 엉성해 보이던 벤자민 나무에도 연두빛 새잎이 다시 돋는다. 말없이 봄을 만들어 가는 나무들이 대견하다. 사람들 같으면 모진 시간들을 견뎌오며 엄살이 많았을 것이다. 자책도 많았을 것이다. 때론 내가 조심하지 않아서, 내가 무능력해서 가지를 부러뜨렸을 것이라고 탄식하며 자신을 괴롭혔을지도 모른다. 벌판에 뿌리를 내려야 했던 자신의 운명을 탓하기도 하고,열매도 거두어 주는 이도 없는 쓸쓸한 골짜기에 태어나게 한 어버이를 원망하기도 했으리라. 완벽하게 아름다운 꽃나무로 자라고 싶었는데 생각만큼 꽃이 아름답지 않았다고, 향기가 멀리가..

혼魂을 쫓다 / 황동규

몇 봄째 홀가분한 매화 여행 꿈꾸었으나 매화 때면 늘 일터를 맴돌게 돼 이제는 꿈의 봄도 몇 남지 않았네. 토요일 오후 연구실 창밑이 환해 내려다보니 정원 청매靑梅 꽃 막 지고 있어 아 새봄이 막 가고 있어 내려가 천천히 걸으며 몸으로 꽃잎을 받았네. 요리저리 피해 땅에 떨어지는 놈이 더 많아 하나라도 더 받으려 몸을 자꾸 기우뚱거렸네. 이러다 내가 죽은 후 혼이 연구실 주변이나 맴돌지 않을까. 동료들 다 나가고 횅한 봄날 토요일 오후에? 두 손 설레설레 흔들어 혼을 쫓는 시늉을 했네.

읽고 싶은 시 2014.04.16

은은함에 대하여 / 도종환

은은하다는 말 속에는 아련한 향기가 스미어 있다 은은하다는 말 속에는 살구꽃 위에 내린 맑고 환한 빛이 들어 있다 강물도 저녁햇살을 안고 천천히 내려갈 땐 은은하게 몸을 움직인다 달빛도 벌레를 재워주는 나뭇잎 위를 건너갈 땐 은은한 걸음으로 간다 은은한 것들 아래서는 짐승도 순한 얼굴로 돌아온다 봄에 피는 꽃 중에는 은은한 꽃들이 많다 은은함이 강물이 되어 흘러가는 꽃길을 따라 우리의 남은 생도 그런 빛깔로 흘러갈 수 있다면 사랑하는 이의 손잡고 은은하게 물들어갈 수 있다면

읽고 싶은 시 2014.04.15

참된 친구 / 신달자

나의 노트에 너의 이름을 쓴다 ‘참된 친구’ 이것이 너의 이름이다 이건 내가 지은 이름이지만 내가 지은 이름만은 아니다 너를 처음 볼 때 이 이름의 주인이 너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지금 나는 혼자가 아니다 손수건 하나를 사도 ‘나의 것’이라 하지 않고 ‘우리의 것’이라 말하며 산다 세상에 좋은 일만 있으라 너의 활짝 핀 웃음을 보게 세상엔 아름다운 일만 있으라 ‘참된 친구’ 이것이 너의 이름이다 넘어지는 일이 있어도 울고 싶은 일이 일어나도 마음처럼 말을 못하는 바보 마음을 알아주는 참된 친구 있으니 내 옆은 이제 허전하지 않으리 너의 깨끗한 손을 다오 너의 손에도 참된 친구라고 쓰고 싶다 그리고 나도 참된 친구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

읽고 싶은 시 2014.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