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 이해인 당신에게 흠뻑 젖으실래요? 슬퍼도 울 줄 모르는 당신 기뻐도 웃을 줄 모르는 당신 오늘은 한 번 실컷 젖어보세요 젖어서 외쳐보세요 나는 젖어있다 나는 살아있다 진정 젖어서 살아 뛰는 당신의 힘찬 목소리를 나는 꼭 한 번 듣고 싶거든요 읽고 싶은 시 2016.03.27
정답(正答) 1 / 홍윤숙 정 답 (正 答) 1 - 놀이 42 세상은 풀 수 없이 흩어진 암호의 숲이었다 나는 그 알 수 없는 숲에 갇혀 흔들리는 하나의 의문부호로 서서 몰아치는 폭풍의 위험을 고작 오십 킬로 미만의 체중으로 버티며 보이지 않는 세상 저편의 미지를 향해 손끝만 스쳐도 속절없이 울리는 악기처럼 울었다.. 읽고 싶은 시 2016.03.22
고 요 / 서정주 고 요 이 고요 속에 눈물만 가지고 앉았던 이는 이 고요 다 보지 못하였네. 이 고요 속에 이슥한 삼경의 시름 지니고 누웠던 이도 이 고요 다 보지는 못하였네. 눈물, 이슥한 삼경의 시름, 그것들은 고요의 그늘에 깔리는 한낱 혼곤한 꿈일 뿐, 이 꿈에서 아조 깨어난 이가 비로소 만길 물 .. 읽고 싶은 시 2016.03.16
달무리 지면 / 피천득 달무리 지면 달무리 지면 이튿 날 아침에는 비 온다 더니 그 말은 맞아서 비가 왔네 눈오는 꿈을 꾸면 이듬해 봄에는 오신다 더니 그 말은 안 맞고 꽃이 지네 읽고 싶은 시 2016.03.08
사 막 . 10 / 김남조 사 막 . 10 사막 초입에 소금평야라니, 일광 불인두로 수분은 지져 말려 응고된 소금 널빤지가 마법의 큰 거울 같다 땅 속엔 무슨 이름인가의 지층들이 책갈피처럼 차례로 접혀 있고 첩첩 그 끝은 지구 저편일 테지 금 없인 살아도 소금 없이는 못 사는 보물밭 저만치가 저절로 결결히 빛부.. 읽고 싶은 시 2016.03.05
인생(人生) 1 / 홍윤숙 인 생 ( 人 生 ) 1 - 놀이 29 인생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험한 산 깊은 계곡 우거진 수풀 지나는 법 별 하나 사랑하고 기다리고 끝내 이별하는 지혜를 다리를 놓아야 마을에 이르고 비를 맞아야 무지개를 보는 것도 알았습니다 가는 목 휘청이며 땅으로 낮게 낮게 질경이로 .. 읽고 싶은 시 2016.03.01
어느 세월 누구에게나 / 김남조 어느 세월 누구에게나 그윽함이여 정신문화의 진수는 눈부심 아니, 꽃다움도 아니 그저 저절로 어느 누구에게나 청명과 치유이느니 지혜로운 이들 저마다 이리 기도했느니 읽고 싶은 시 2016.02.25
원경(遠景) / 김남조 원 경 (遠 景) 숲의 원경은 신비하다 안개창호지와 바람망사를 두른 저곳은 다친 마음들이 쉬러 가는 지상의 끝방이려니 저곳에 나도 잠입할거나 햇빛 수런대고 나무마다 푸르게 약동하는 숲의 육신은 너네의 것, 당신들의 땅입니다라고 후련히 양보해버리고 그림자 언저리 안 보이게 물.. 읽고 싶은 시 2016.02.19
자존심에 대한 후회 / 정호승 자존심에 대한 후회 나에겐 버릴 수 있는 자존심이 너무 많은 게 탈이었다 돈과 혁명 앞에서는 가장 먼저 가장 큰 자존심을 버려야 했다 버릴 수 없으면 죽이기라도 해야 내가 사는 줄 알았다 칼을 들고 내 자존심의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가 자객처럼 자존심의 심장에 칼을 꼿아도 자존심.. 읽고 싶은 시 2016.02.09
손에 대한 묵상 / 정호승 손에 대한 묵상 인생을 돌아다닌 내 더러운 발을 씻을 때 나는 손의 수고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손이 물속에 함께 들어가 발을 씻긴다는 사실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인생을 견딘 모든 발에 대해서만 감사했습니다 배가 고파 허겁지겁 밥을 먹을 때에도 길을 가다가 두 손에 흰 눈송이.. 읽고 싶은 시 2016.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