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시

인생(人生) 1 / 홍윤숙

윤소천 2016. 3. 1. 10:05


인 생 ( 人 生 ) 1

- 놀이 29




인생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험한 산 깊은 계곡 우거진 수풀 지나는 법

별 하나 사랑하고 기다리고 끝내 이별하는 지혜를

다리를 놓아야 마을에 이르고

비를 맞아야 무지개를 보는 것도 알았습니다

가는 목 휘청이며 땅으로 낮게 낮게 질경이로 퍼져서

밟히고 다져지는 법도 배우고

무거운 마음의 진흙 더미 털어내고

모습 없이 가벼운 바람이 되는

무소유의 자유도 일러주었습니다

이제 그가 전해줄 마지막 말은

어두운 밤 길 등불 없이 산을 넘어

어느 날 예고 없이 세상 끝에 닿는 일

그 마지막 가르침을 듣기 위해 나는

날마다 하늘에 귀 열어놓고

끄슬린 창들을 닦습니다

세상의 매운 연기 아직도 자욱해

닦으면 끄슬리고 끄슬리면 다시 닦고

오직 그 한 가지 일에 온 날을 지샙니다

슬프지도 않은 눈물 가끔 옷깃을 적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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