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수필 144

가로등 / 박목월

가로등이 좋아지는 것은 역시 겨울철이다. 함박눈이 쏟아지는 밤에 설레는 눈발 속에 우러러보는 등불, 그것은 우리의 감정이 닿을 수 있는 동경(憧憬)의 알맞는 위치에 외롭게 켜있는 꿈의 등불이다. 그 등불이 켜진 가로등 기둥에 호젖이 기대서서 가없는 명상에 잠시 잠겨보는 고독, 그것은 나의 젊은날의 눈물겨운 모습이다. 그러나 요즘은 눈 오는 밤 가로등에 기대 보는 그런 고독한 낭만조차 잊은지 오래다. 그것은 나의 연령의 탓만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인간이란 나이가 들수록 한결 고독한 것이며, 그래서 눈이 오는 밤은 한결 유감해지는 것이리라. 다만 내가 고독한 낭만을 못 가지는 것은 세태의 탓일 것이다. 해방후로 우리는 밤의 낭만을 잃은 것이다. 그 포근한 밤의 지향없는 소요를 통행금지라는 법이 막고 있는 ..

겨울밤의 얘기 / 노천명

"좋아하는 눈 왔어요, 어서 일어나세요." 할멈이 내 창 앞에 와서 이렇게 지껄이는 소리에 얼른 덧문을 열고 내다보니 눈보라가 날리고 있어 내가 또 싱겁게 좋아했더니 저녁부터 날씨는 갑자기 쌀쌀해지고 말았다. 방이 외풍이 세서 어제 오늘로 부쩍 병풍이 생각나고 방장 만들 궁리를 한다. 시골집의 어머니가 쓰시던 낡은 병풍을 가져올 생각이 든다. 어머니는 그 병풍을 치고 내가 홍역을 할 때 밤을 꼬빡 새시며 얼굴에 손이 못 올라가게 지키셨다고 들었다. 지금 그것을 내 방에다 가져다 치고 보면 내 생각은 전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계시던 우리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불타산 뾰죽한 멧부리들이 둥글게 묻히도록 눈이 와 쌓일라치면 아버지는 친구들과 곧잘 노루 사냥을 떠나셨다. 그래가지고는 그제나 시방이나 몸이 ..

겨울 정원에서 / 유달영

정원에 흰 눈이 가득하게 덮였다. 연인을 안으려고 벌린 두 팔처럼 광교산에서 뻗어내린 산줄기가 겨울철에는 우리 평화 농장 좌우편에서 유난스레 푸르르다. 우리 농장도 광교산의 한 줄기로 완만하게 뻗어내린 경사지이다. 왼편으로 맑은 시내가 흘러내리고 바른편으로 제법 노송의 티가 도는 수령 백 년 안팎의 송림이 길게 둘러 있어 우리 농장의 울타리 구실을 하고 있다. 농막 주위에는 십여 년 전, 내가 이 땅을 개간하던 무렵에 심어서 가꾸어온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이제는 모두 크게 자라서 고개를 젖히고 올려다 보게 되었다. 나와 내 아내가 해마다 땅을 파고 거름을 묻고, 가지를 간추려 주고, 벌레를 잡고 병을 막기 위해 소독을 하면서 지성스럽게 가꾸어 온 나무들이다. 그러므로 어느 한 그루 정들지 않은 것이 없다..

청바지와 나 / 윤재천

나는 청바지를 좋아한다. 다크 블루, 모노톤 블루, 아이스 블루…. 20여 년 동안 색의 농도에 따라, 바지의 모양에 따라 많이도 모았다. 특별한 모임에도 눈에 거슬리지만 않는다면 나는 청바지를 입는 것이 더 편하고 자신 있다. 요즘 들어 살아온 연륜이 낯설게 느껴진다. 때로 내 몸을 휘감은 나이테가 육칠십을 헤아리게 되었다는 사실 앞에서 묘한 감정에 빠져들곤 한다. 그러나 낯선 숫자가 만들어내는 감상에 휘말려 실제 나이보다 늙게 살고 싶진 않다. 나는 젊음의 한 끝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시간이 있을 때마다 산에 오르고, 심부름하는 아이가 없는 썰렁한 방이지만 출퇴근 시간을 정해 놓고 방을 지키는 것은 스스로를 위해 마련한 규칙 중의 하나다. 청바지를 즐겨 입는 것도 그런 의도의 일환이다. 청바지..

빗방울 연가 / 염정임

장마철이 시작되어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 창문으로 비가 들치며 빗방울이 유리창 위를 조롱조롱 흘러내린다. 흘러내리는 빗방울은 둘이 합쳐지기도 하고, 하나로 흐르다가 다시 둘로 갈라지기도 한다. 비가 오는 날이면 우리의 감성도 푹 젖어 옛날 추억도 생각나고 오래 된 영화의 한 장면도 생각난다. 비는 그리움의 세계로 또한 매혹적인 사랑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빗금이 쳐지는 창문 앞에 한 젊은 여인이 서 있다. 레이스가 달린 검은 드레스를 입고 검은 모자를 쓴 아가씨는 애인과 도망가기로 약속을 했는데 집 안에 가두어져 나갈 수가 없는 것이다. 비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그녀는 초조한 모습으로 서성인다. 오래전에 본 영화 의 한 장면이다. 방대한 이야기 속에 여러 장면이 있지만 유독 이 장면은 잊히지 않는다..

봄, 수목원을 읽다 / 윤승원

봄, 수목원은 만연체다. 온갖 나무와 풀들이 저마다 화려한 문장을 쓰느라 술렁거린다. 노랗고 빨갛고 흰 색깔들이 나의 독서를 유혹한다. 나는 청명의 안개 속을 걸어 만화방창 꽃의 문장 속으로 들어간다. 병아리 깃털 같은 햇살이 민들레처럼 피어나는 낮 시간도 좋고, 청자 빛 하늘이 노을로 채색되는 저녁 무렵도 좋지만 나는 푸르스름한 이내가 깔린 여명의 수목원을 좋아한다. 제비꽃, 족두리풀, 목련, 명자꽃들이 새 명찰을 달고 제 이름을 불러달라는 듯 손을 흔들고 서있다. 문고판 같은 야생화며 전집류의 나무들이 수목원도서관에 가지런히 꽂혀 있다. 이 푸른 도서관의 사서는 잠시 출타중인 모양이다. 바람이 먼저 책을 읽으려는지 팔랑팔랑 책장을 넘기고 있다. 나는 서둘러 달려온 마음을 옆에 내려놓고 형형색색으로 단..

발(簾) / 변해명

항라(亢羅) 적삼 안섶 속에 연적 같은 저 젖 보소 담배씨만큼만 보고 가소 더 보며는 병납니더. 읽으면 읽을수록 익살과 은근한 멋이 씹히는 글이다. 우물에서 물동이를 이는 여인이 두 팔로 무거운 물동이를 받쳐 올리노라면 그 힘에 그만 가슴을 조여 매었던 치마 허리가 흘러내리기 일쑤다. 어느 처녀가 우물가에서 물동이를 이다가 그처럼 치마 허리가 흘러내렸다면 순간 연꽃의 씨방 같은 예쁜 젖가슴이 드러나고야 말았을 것이다. 한 겹 아른거리는 항라 적삼에 가리워진 곡선을 슬쩍 훔쳐 본 눈길이 있었다면 담배씨만큼으로도 병이 나지 않을 리 없다. 노출되지도 않았으면서 윤곽이 드러나는, 그래서 더 아름다운 곡선, 은은하면서도 속되지 않은 연연함이 손에 잡힐 듯하다. 여름의 발이 항라 적삼과 같은 것이 아닐까? 나는 ..

두꺼비에 대한 몇 가지 생각 / 조지 오웰

제비보다 먼저, 수선화보다 먼저, 눈풀꽃 보다 그다지 늦지 않게 두꺼비는 다가오는 봄에 나름대로 인사를 한다. 바로 지난 가을부터 웅크리고 있던 땅속 구멍에서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적당한 물둥덩이로 할 수 있는 한 빨리 기어가는 것이다. 무엇인가가 두꺼비에게 이제 깨어날 시간이라고 알린다. 땅의 진동같은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단지 온도가 몇 도 올라간 탓일 수도 있다. 물론 내내 자다가 한 해를 놓치는 두꺼비도 간혹 있는 듯하다. 어쨌든 나는 살아 있고 건강해 보이는 두꺼비를 한여름에 땅에서 파낸 적이 한 번 이상 있었다. 이 무렵이면 오랜 단식을 마친 두꺼비는 사순절이 끝나갈 무렵의 앵글로 가톨릭교도들처럼 대단히 종교적인 인상을 풍긴다. 움직임은 힘이 없지만 절도 있고 몸은 쪼그라든 반면 눈은..

신춘(新春) / 피천득

1월은 기온으로 보면 확실히 겨울의 한 고비다. 쉘리의 ‘겨울이 오면…’이라는 구절(句節)을 바꾸어 ‘겨울이 짙었으니 봄이 그리 멀겠는가?’ 이런 말을 해보았더니, 신문사에서는 벌써 ‘신춘에 붙여서’라는 글제를 보내왔다. 1월이 되면 새봄은 온 것이다. 자정이 넘으면 날이 캄캄해도 새벽이 된 거와 같이. 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1월은 봄이다. 따듯한 4월, 5월을 어떻게 하느냐고? 봄은 다섯 달이라도 좋다. 우리나라의 봄은 짧은 편이지만, 1월부터 5월까지를 봄이라고 불러도 좋다. 봄은 새롭다. 아침같이 새롭다. 새해에는 거울을 들여다볼 때나 사람을 바라다볼 때 늘 웃는 낯을 하겠다. 얼마 전에 잘못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문득 들리는 꾀꼬리 같은 목소리였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하는 신선한 웃음소리는 ..

나는 어떻게 수필을 쓰는가 / 이정림

우리의 일상생활이란 참으로 밋밋하고 평범하다. 그 평범한 나날을 느슨한 정신으로 지내다보면,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비슷한 날들이 계속되게 마련이다. 모든 것이 그저 낯익고 익숙하기만 해서, 지각(知覺)을 흔들어 깨울 만한 어떤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날, 아니 어느 순간, 그 낯익고 익숙한 것들이 갑자기 낯설게 여겨지는 때가 있다. 그 낯설음 앞에서 우리는 순간 당황하게 되고, 그 당황함은 잠자던 사고(思考)를 자극하여 인생의 본질적인 문제들을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동기를 부여하게 된다. 그리고 그 낯설음을 글로 표현해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이것을 우리는 소재의 충동이라 하는데, 이 충동이 없이는 글은 씌어지지 않는다. 모든 글은 이 충동에서 비롯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