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수필 143

백마호白馬湖 / 주자청

오늘은 비가 오는 날이다. 비가 와서 그런지 백마호白馬湖가 생각난다. 내가 백마호에 처음 왔을 때가 바로 산들바람이 살랑거리던 봄날이었기 때문이다. 백마호는 용소俑紹 철도상의 역정驛亭 정거장에 위치한 아주 작은 시골 구석에 있다. 북방에서 백마호를 이야기하면 필시 백이면 백 사람 모른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거긴 괜찮은 곳이다. 이름부터가 괜찮은 이름이다. 송宋나라 때인가 어느 주周씨가 백마를 타고 호수로 들어가 신선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어서 이렇게 이름 붙었단다. 이런 전설 역시 괜찮은 이야기다. 당신이 이런 전설을 수집하여 한 권의 소책자로 엮어낸다면 북신서국北新書局에 넘겨 출판해도 좋다. 백마호는 둥그렇거나 네모진 호수가 아니다. 짐작하겠지만 굽이굽이 돌아가는 크고 작은 호수들을 모두 합쳐서 부르는..

푸른 빛 綠 / 주자청朱自淸

두 번째로 선암仙岩에 갔을 때, 나는 매우담梅雨潭의 푸르름에 경탄 하였다. 매우담은 하나의 폭포였다. 선암에는 세 개의 폭포가 있는데, 그 가운데 매우담이 가장 낮은 곳에 있다. 산에 오르면 이내 콸콸거리는 물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들면 양쪽의 축축한 어둠을 뚫고 흐르는 하얗게 빛나는 물줄기가 눈앞에 펼쳐진다. 우리는 먼저 매우정에 올랐다. 매우정은 폭포와 마주보고 있어 정자에 앉으면 고개를 들 필요 없이 바로 폭포 전체가 보인다. 정자 아래로 매우 깊숙한 곳이 매우담이다. 이 정자는 밖으로 툭 튀어나온 편편한 바위덩이 한쪽 귀퉁이에 자리 잡고 있다. 그 형상이 마치 날개를 활짝 편 한 마리의 매가 하늘에 떠있는 것 같다. 삼면이 모두 산으로 둥근 옥처럼 둘러싸여 있어 우리는 마치 우물 안에 와 있는 느..

수양버들 앞에서 / 최은정

나는 늙은 소나무를 좋아했고, 고목의 느티나무를 좋아했으며 나이든 묵은 감나무를 좋아했다. 그런데 어느 날 수양버들이 마음에 들어앉기 시작했다. 바람 부는 대로 순응하고, 머리를 드는 것이 아니라 땅에 고개를 숙이고 얼어붙은 대지가 녹으면 봄을 먼저 알린다. 강한 바람에도 풀어지지 않는 자세가 좋다. 한때는 풍전세류라고도 하고 노류장화라고도 하면서 지조 없는 것의 상징으로 비유했다. 교육자이시던 시아버님도 학교 주변에는 버드나무를 심지 않는다고 하셨다. 이유인즉, 올라가다 쳐져 버려 기상이 없다고 해서이다. 아이들이 한창 자랄 때 행여 버들이 될까 봐 싫어했다. 그런 내게 대학 교정에 그늘을 드리운 채 사색에 잠긴 듯 서 있는 ㅜ수양버들이 노학자의 겸손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고고하고 위풍이 있어 보인 것..

생활과 행복 / 윤오영

아침부터 저녁까지 밥해먹고 집안 치우고 빨래하고 살아가기가 바빠서 아무런 오락이나 향연의 여유도 없이 판에 박은 듯한 생활을 되풀이하는 가난한 한국인의 생활을 보고, 어느 미국 사람이 “대체 저 사람들은 무슨 재미에 왜 사는지 알 수 가 없다”고 했다. 텔레비전이 있고 냉장고가 있고 자동차가 있는 문화 주택에 사는 미국 사람이 생활고에 자살했다는 말을 듣고 어느 한국 사람이 “그것은 너무 복이 과해서 죽은 것이 아닌가. 그런 부자나라에서 자살이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다. 얼른 생각하면 서로 당연한 생각들이다. 그러나 사정을 알고 보면 저마다 행복한 생활을 희구하고 했건만 행복하지를 못했다. 예전에 어느 호강하는 대신이 달밤에 시골 산모롱이를 지나다가 오막살이 초가집에서 늙은 부부가 젊은 며느리 내외와..

참새 / 윤오영

짹 짹 짹. 짹 짹. 뭇 참새의 조잘대는 소리. 반가운 소리다. 벌써 아침나절인가. 오늘도 맑고 고운 아침. 울타리에 햇발이 들어 따스하고 명랑한 하루를 예고해 주는 귀여운 것들의 조잘대는 소리다. 기지개를 펴며 눈을 부빈다. 캄캄한 밤이 아닌가. 전등의 스위치를 누르고 책상위의 시계를 보니, 새로 세시다. 형광등만 훤하다. 다시 눈을 감아도 금방 들렸던 참새 소리는 없다. 눈은 멀거니 천정을 주시한다. 참새는 공작같이 화려하지도, 학같이 고귀하지도 않다. 꾀꼬리의 아름다운 노래도, 접동새의 구슬픈 노래도 모른다. 시인의 입에 오르내리지도, 완상가에게 팔리지도 않는 새다. 그러나 그 조그만 몸매는 귀엽고도 매끈하고, 색깔은 검소하면서 조촐하다. 어린 소녀들처럼 모이면 조잘댄다. 아무 기교도 없이 솔직하고..

목중 노인/ 윤오영

“ 우중에 백초가 가을 들어 다 졌다마는 뜰 앞에 결명화決明花는 안색도 고운지고 雨中白草秋欄死 階下決明顔色鮮 ” 송죽이나 국매菊梅는 모르는 이 없지마는 뜰 앞의 결명초는 아는 이가 드물다. 바람 속에 서서 향기를 맡아보며 눈물을 흘린 사람은 오직 두자미杜子美가 아니었던가. “ 임풍삼후형향읍 臨風三嗅馨香泣 ” 이란 낙구落句가 그것이다. 범인凡人은 살기 위하여 드디어 저를 죽이고 위인은 한 번 죽음으로써 영원히 산다. 그러나 위인의 일생이 반드시 다 뛰어난 것이 아니다. 그의 사생활에는 결함도 많고 과오도 많을 수 있으며 식견이나 재능도 반드시 높은 것은 아니다. 오직 의義를 위하여 이利를 버리고 진眞을 위하여 생을 끊은 최후의 일거가 길이 천추에 빛나는 것이다. 이것을 누구나 경모하면서 행하기가 어렵다. ..

멸망하는 것의 아름다움 / 박범신

좁은 마당이지만, 가을이 깊으니 텅 비어있다. 꽃 욕심이 많아 해마다 봄이면 빈자리 없이 일년초를 사다가 심곤 한다. 올해라고 뭐 달랐겠는가.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가을 늦도록 피는 백일홍과 취꽃 (취나물꽃은 자생해서 자라 여기저기 제 스스로 알아서 번져나가는 것으로서 일년초가 아니다), 베고니아가 흐벅지게 피어 있었는데,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밤을 보내고 나서 뜰에 나가보았더니 모두 식초에 담가낸 것처럼 흐물흐물 무너져 있다. 보기가 싫어 모조리 뽑아 허드레 자루에 눌러 담는다. 마음속에서 쏴아 하고 바람 소리가 난다. 추억이 없다면 쓸쓸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을 터이다. 폭풍우가 지난 듯 휑뎅그렁한 마당 가운데 혼자 앉아 있으니까 봄부터 늦가을 까지 애면글면, 나와 만나고 나와 관계 맺고 나와 함께 놀..

가을에 겪은 사건 / 박범신

죽음의 공포로 나는 산에 올랐다. 또다시 죽는 시간의 불확실성에 대해 명상했더니 마음의 본성이 죽음을 넘어선 영구적인 요새임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이 가을에 나는 꽉 채워서 예순 살이 되었다. 그사이 나는 꽤 오랫동안 시간이 주는 고통스런 억압 속에 있었다. “청년작가‘라는 별칭으로 불릴 때도 내 가슴속 어둑신한 동굴엔 시간이 유장하고 속절없이 흘러갔다. 늙고 병들고 죽어갈 소멸의 과정을 생각하면 언제나 앞이 캄캄해졌다. 그 가혹한 실존 앞에 서면, 글쓰기에 대한 욕망도 어떤 사회적 지위도 다 소용없었다. 나는 그래서최근 몇 년간 글쓰기조차 온통 미루어 놓고, 세상 끝까지 떠돌아다녔다. 그런데 가을에 내 안에서 무슨 일인가 일어났다. 겉으로는 모든 게 그대로였지만, 시시각각 나는 내 안에서 어떤 경이로운..

신 산상설교 / 최인호

악마가 도시의 거리로 걸어 들어오자 많은 무리들이 곁으로 다가왔다. 악마는 입을 열어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의 것이다”라는 예수의 말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가난한 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극복할 만한 의지가 없는 사람이다. 마음껏 착취하고 수단을 가리지 않고 소유해서 부유한 부자가 되어야 행복한 것이다. 인간은 마음껏 지상의 풍요한 물질을 소유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라는 예수의 말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슬퍼하는 사람은 게으른 사람이다. “바쁜 벌은 슬퍼할 겨를도 없다”는 서양 속담도 있지 아니한가. 인생은 즐거운 것이다. 마음껏 먹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여..

하늘잠자리 / 손광성

가을 하늘에 홀연히 나타난 한 무리의 하늘잠자리. 참 가볍다. 얼마를 덜어내야 저만큼 홀가분할 수 있을까. 중력조차 따돌린 가뿐한 부상. 내장을 토해 낸 듯 홀쭉한 배. 햇빛을 투과시켜 버리는 삽상한 날개. 어디에도 어두운 그림자 같은 것은 없다. 투명하다. 투명한 것들은 자주 침묵한다. 무엇을 더 해명하랴. 이미 속속들이 들켜 버린 것을. 말을 입는 순간 자명한 진실도 모호해져서는 뒤뚱거리게 되는 법. 종파에 관계없이 수행의 기본이 묵상인 것은 그 때문이리라. 하늘잠자리의 침묵은 그러나 고행승의 그것처럼 무겁지 않다. 맑고 밝고 가볍다. 이루려는 자의 침묵이 아니라 이룬 자의 침묵 같은 것. 그런 회심의 침묵에서는 언제나 맑은 향기가 난다. 모진 겨울을 견뎌 낸 가지 끝에 비로소 핀 한 송이의 매화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