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수필 144

무소유의 극치 / 황동규

​ 소유와 소유욕이 얽히고 설킨 세상에 살다 보면, 무소유의 세계가 그리워지고, 무소유의 삶을 온몸으로 살다 간 선인들이 그리워지곤 한다. 우리나라에도 원효나 김시습 같은 무소유의 멋쟁이 구걸승이나 방랑자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사람들이 무리지어 살았던 시기와 장소는 당나라 후기와 송나라 초기의 중국이 아니었나 싶다. 그때 한산(寒山)이나 방거사(龐居士) 같은 명품은 말할 것도 없고 오가(五家) 칠종(七宗)의 거의 모든 선승들이 소유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삶을 살았던 것이다. 선승들의 이야기는 거의 다 개성 있는 빛을 지니고 있다. ]그 많은 독특한 빛들 속에 가장 강렬한 것 가운데 하나는 조주(趙州)스님과 투자(投子) 스님 사이의 첫 만남 장면이다. 당시 조주는 맨몸으로 방랑을 하고 있었고 투..

봄 / 피천득

“인생은 빈 술잔, 카펫 깔지 않은 층계, 사월은 천치와 같이 중얼거리고 꽃 뿌리며 온다.” 이러한 시를 쓴 시인이 있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이렇게 읊은 시인도 있다. 이들은 사치스런 사람들이다. 나같이 범속한 사람은 봄을 기다린다. 봄이 오면 무겁고 둔한 옷을 벗어버리는 것만 해도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다. 주름살 잡힌 얼굴이 따스한 햇볕 속에 미소를 띠고 하늘을 바라다보면 곧 날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봄이 올 때면 젊음이 다시 오는 것 같다. 나는 음악을 들을 때, 그림이나 조각을 들여다 볼 때, 잃어버린 젊음을 안개 속에 잠깐 만나는 일이 있다. 문학을 업으로 하는 나의 기쁨의 하나는, 글을 통하여 먼 발자취라도 젊음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젊음을 다시 가져 오게..

다듬이 소리 / 최은정

슬하에 육남매를 둔 시어머님께서는 그 엄청난 빨래감을 혼자서 해내셨다. 내게 힘든 일은 안 시켰지만 푸새질만은 반드시 내가 시어머님 옆에 있어야 했다. 이불 홑니는 명주가 제격이고, 요 홑니는 흰 옥양목이 으뜸이다. 봄풀은 누그럼해야 되고, 여름풀은 세어야하고, 가을풀은 개가 핥기만 해도 빳빳해진다고 한다. 푸새질 날은 앞줄 뒷줄 흰 홑니가 햇빛에 반사되어 눈이 부시다. 알맞게 마른 빨래를 넓은 대청으로 걷어와 빨래보에 깔고 잔손질을 한다. 솔기를 펴고 실밥을 뜯어내고 네 귀를 맞춰 둘로 접는다. 그것을 다시 접어들고 어머니와 나는 줄어든 홑니를 양쪽에서 잡아당긴다. 살짝살짝 뒤로 넘어지듯 잡아야지 내 손에서 빨래를 놓치면 어머니가 뒤로 넘어지시고, 너무 세게 잡아당기면 앞으로 넘어진다. 그 알맞은 당김..

아름다운 소리들 / 손광성

소리에도 계절이 있다. 어떤 소리는 제철이 아니면 제 맛이 나지 않는다. 또 어떤 소리는 가까운 곳에서 들어야 하고 다른 소리는 멀리서 들어야 한다. 어떤 베일 같은 것을 사이에 두고 간접적으로 들어야 좋은 소리도 있다. 그리고 오래 전에 우리의 곁을 떠난 친구와도 같이 그립고 아쉬운 그런 소리도 있다. 폭죽과 폭포와 천둥소리는 여름에 들어야 제격이다. 폭염의 기세를 꺾을 수 있는 소리란 그리 많지 않다. 지축을 흔드는 이 태고의 음향과 ‘확’하고 끼얹는 화약 냄새만이 무기력해진 우리의 심신에 자극을 더한다. 뻐꾸기며 꾀꼬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폭염 아래서는 새들도 침묵한다. 매미만이 질세라 태양의 횡포와 맞서는데, 파도처럼 밀려오는 그 힘찬 기세에 폭염도 잠시 저만치 비껴 선다. 낮에는 마루에 누워..

집필실 / 안도현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할 때 작가들은 집필실을 찾는다. 이름을 알 만한 작가 중에는 오피스텔을 개인 집필실로 두고 있는 경우도 있다. 자치단체나 문인단체에서 지원하는 공간으로는 강원도 백담사 민해마을과 원주의 토지문화관, 서울의 연희문학창작촌이 대표적이다. 제주의 마라도 창작스튜디오는 유배 가듯 짐을 싸서 들어가는 곳. 최근에는 과학도를 기르는 카이스트에서도 작가 지원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글을 쓰기 위해 절을 찾는 작가들이 있었다. 세속의 번잡함으로부터 떨어져 있으면서 자신의 내부를 간섭받지 않고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이 절이다. 그동안 절에서 잉태한 한국문학에 큰 족적을 남긴 작품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 산사라는 공간이 작가에게 집필 장소만 제공했을까? 절을 감싸고 있는 산과 그 고..

필명 / 안도현

​ 어느 날 우리 집으로 청첩장이 하나 도착했다. 신랑 이름이 안도현이었다.어째 이런 일이! 나하고 이름이 똑같은 신랑은 시를 쓰는 후배였다. 혼동을 피하기 위해 그는 나중에 하는 수 없이 필명을 안찬수로 바꾸었다. 선배를 잘못 둔 덕분이었다. 지금도 나는 그를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문학청년 시절에 만났던 몇 사람도 이름을 바꾸었다. 시인 이상백은 이산하가 되었고, 시인으로 등단했던 김정숙은 소설가로 활동하면서 김형경이 되었다. 류시화 시인이 신춘문예에 당선될 때 이름은 안재찬이었다. 창원의 경남대를 갔을 때 소설가 전경린은 없었다. 연구실 문패는 안애금이었다. 아예 성까지 바꿔 필명을 만든 경우는 30낸대의 이상이 처음이 아닌가 한다. 그의 본명을 김해경이었다. 강하고 뻣센 느낌의 조동탁보..

미안한 책 / 안도현

한 달에 공으로 받아보는 책이 100권쯤 되는 것 같다. 사인이 들어간 시집이나 소설집도 있고, 출판사에서 보내주는 신간도 있다. 저자의 노력과 정성에다 인쇄 비용과 우편요금까지 생각하면 고맙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한 페이지 열어보지 못하고 쌓아두고 마는 책도 있다. 예전에는 새로 발간된 책을 보내면 답장을 보내주던 아름다운 풍습이 있었다. 1930년대 중반 전북 부안에 살던 신석정은 시집 《사슴》을 받고 백석에게 라는 시를 써 보내 감사를 표시했다. 생전에 조병화 시인은 엽서에다 자신의 상징인 파이프를 그려 넣어 잘 받았다는 표시를 해주셨고, 김규동 시인은 한지에다 그림을 그리고 시 한 구절을 적어 보내주시기도 했다. 아흔을 눈앞에 둔 김종길 선생님은 시집을 읽은 소감을 몇 말씀이라도 적어 보내면서 격..

어린 날의 초상 / 문혜영

우리 가족은 이북에서 살다가 1·4후퇴 때 월남하였습니다. 피난 오면서 아버지를 잃고 또 오빠마저 세상을 떠나게 되니, 남은 사람은 어머니와 올망졸망한 우리 네 자매뿐이었습니다. 사선을 넘으면서 목숨 하나 부지하기도 어려웠던 우리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빈 주먹으로 어느 도시에 정착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그 곳의 여자상업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게 되셨기 때문입니다. 방 한 칸 마련할 수조차 없었던 우리의 처지를 생각했음인지 학교에서는 관사에서 살도록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말이 관사지 방이 둘, 부엌이 둘 있는 작은 일본식 집이었습니다. 그나마 방 하나는 숙직실로 사용했기 때문에 우리는 방 하나만을 차지하고 살았습니다. 나는 지금도 그 집이 눈에 선합니다. 방과 후면 어머니가 가르치시는 학생..

있음의 흔적 / 이정림

아무에게도 의지 할 곳이 없는 할머니들이 여생을 함께 보내는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안내하는 사람을 따라 그 집 현관을 들어서다가 나는 우연히 벽에 걸린 게시판을 보게 되었다. 거기에는 색종이로 만든 꽃잎들이 한 오십여 장 붙어 있었다. 그리고 화심花心에는 할머니들의 사진이 꽃술 인양 들어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어느 유치원의 벽에 붙은 원아들의 사진과도 같았다. 살짝 찡그린 얼굴이 있는가하면 눈을 감은 얼굴, 무뚝뚝해 보이는 얼굴, 앞니가 한 개도 없는 입을 활짝 벌리고 웃는 호호백발 할머니의 동안童顔… 노인들의 사진을 무심히 훑어보다가 나는 한구석에서 얼굴이 없는 꽃잎 몇 개를 발견하였다. 얼굴 없는 꽃잎. 그것은 본래부터 꽃잎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어제 오늘 사이에 이승을 떠난 할머니들이 남..

휴가 유감 / 안도현

휴가는 다녀오셨어요? 아무렇지 않게 이런 인사를 받으면 나는 참으로 난감해진다. 대답할 말이 없는 것이다. 피서는 좀 다녀오셨어요? 차라리 이렇게 묻는다면 몰라도 ‘휴가’라는 이름으로 평생 한 번도 어딜 다녀와 보질 못했다. 휴가를 가기 위해 계획을 짜본 적도 없고, 떠나기 전에 설레는 마음을 품어본 적도 없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주로 선생이었거나 글을 쓰는 백수였다. 선생은 방학이 있으니 휴가를 신청할 일이 없고, 백수에게는 나날의 삶이 늘 휴가여서 따로 휴가 갈 기회가 없었다. 요 몇 년 사이 휴가의 개념이 비로소 일상 속으로 들어와 굳어진 듯한다. 직장인이라면 여름철에 당연히 다녀와야 하는 통과 의례처럼. 고속도로 휴게소가 명절 때처럼 붐비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일상에서 단 며칠이라도 벗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