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령(言靈)이라는 한문 숙어의 그 어원을
상고(詳考)치는 못했으나 우리는 무속적 차원에서만
쓰고 있는 성 싶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현대언어학 특히 시어의 고찰에 자주 쓰이는 말로서
즉 말이 내제한다고 믿어지는 신령한 힘을 뜻합니다.
가령 오늘의 어느 시인이 찬란한 언어와 능란한 솜씨로
만해 한용운이나 필리핀의 호세리살의 시보다 훨씬
애국적인 시를 만들어 내었다 해도, 내실이 없이는
그 말은 마치 무정란(無精卵)과 같아서 독자들에게
감동이라는 새 생명을 부화시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말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신령한 면이 있어서
<논어>에 < 교언령색(巧言令色)하는 사람은 어짐이 적다 >든지
불교에서 말하는 열 가지 죄악 중의 하나인 <기어(綺語)>
즉 비단 같은 말이 큰 죄악으로 꼽히는 것은
다 언령이 결한 말을 뜻함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날 참으로 말의 풍성한 잔치 속에 삽니다.
신문을 비롯한 각 언론기관을 통해서 매일 쏟아져 나오는
정치 종교 및 사회 각계 지도자 또는 각 방면의
전문 지식인들의 그 옳고 착하고 아름답고 거룩하기까지 한 말이
액면 그대로라면 우리 사회가 금방 이상사회로
변하고 그것을 누릴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우리의 세상살이가 고쳐지기보다는
오히려 더욱 그릇되고 거칠어질 뿐만 아니라 말을
하는 사람이나 말을 듣는 사람이나
가책과 감동이 없이 말은 말대로
공전시키고 있다면 나의 지나친 말인지.
여하간 오늘의 말 특히 사회적인 말이 빈말이거나
공염불이 되는 것은 결국 우리의 말이 언령을 지니지
못한 까닭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말이 생명을 지니고 신령한 힘을
지니기 위해서는 무엇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
설명할 것도 없지만 그 말을 지탱하는 내면적 진실,
즉 그 말이 지니는 등가량(等價量)의
윤리적 의지와 그 체험일 것입니다.
< 행하기는 쉽고 말하기가 어렵다 >는
역설적 격언도 있는데 이것도 역시
언령(言靈)을 지닌 말을 가리키는 것일 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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