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수상

“성모 마리아가 신이라도 되냐고요” / 백성호의 현문우답

윤소천 2023. 11. 19. 17:10

 

 

 

 

# 풍경 1 : 가톨릭 성당에 들어서면 성모 마리아상이 있습니다.

교인들은 마리아상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합니다.

개신교 일각에선 그걸 두고“왜 마리아를 믿는가? 마리아가 신인가?

그건 우상이다. 왜 우상숭배를 하는가?”라고 몰아붙이기도 합니다.

가톨릭은 반박합니다. “그건 오해다. 마리아를 신으로

믿는 게 아니다. 다만 주님의 어머니를 공경하는 것이다.

우리가 숭배하는 것은 삼위일체 하느님뿐이다.”

   

그래도 공박은 계속됩니다. “그럼 공경만 해야지, 왜 기도를 하나?

마리아상 앞에서 기도를 하지 않나? 그게 우상숭배가 아니고 뭔가?”

가톨릭은 다시 반박합니다. “처녀의 몸으로 잉태한 마리아는

하느님의 뜻에 순명했다. 그래서 성모님께 대신 기도를 해달라고

청하는 거다. 가톨릭에선 그걸 가리켜‘전구(轉求)를 청한다'고 한다.

과연‘성모’에 담긴 뜻은 뭘까요?

 

# 풍경 2 : 중국 후베이성(煳北省) 황매현에는 오조사(五祖寺)란

사찰이 있습니다. 오조사는 달마(초조)-혜가(이조)- 승찬(삼조)

- 도신(사조)으로 이어지는 중국 선종의 법맥을 잇는

오조 홍인(601~674)대사가 주석했던 절입니다. 홍인대사는 중국 대륙에

선종의 꽃을 활짝 피웠던 육조 혜능의 스승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조사에는 특이한 이름의 전각이 있더군요. 다름 아닌

‘성모전(聖母殿)’입니다. 안에는 붉은 망토를 두른 불상이 모셔져 있죠.

그런데 불상이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습니다.

   

안내인은“오조 홍인 대사의 어머니를 모신 곳”이라고 하더군요.

홍인 대사의 어머니가 하늘의 정기를 받아 처녀의 몸으로 자식을 낳았다는

 설화가 전해집니다. 그 지역에는‘성모사(聖母寺 )라는 사찰도 있죠.

홍인대사의 어머니를 모신 곳입니다. 중국에선 순결한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가지는 걸‘투태(投胎)’라고 부르더군요.

 

순례객은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따지는 이들도 있었죠.

“왜 홍인 대사의 어머니를 부처님처럼 모셨나?

게다가‘성모전’이란이름까지 달았지?” “깨달음은 홍인 대사가

얻은 것이지, 대사의 어머니가 얻은 것은 아니지 않나.

그런데 전각까지 지어서 모시다니, 이건 해도 너무 하는군!”

사람들은 따집니다. ‘성모(聖母)’란 말을 놓고 왈가왈부합니다.

그리스도교 역사에서도‘성모 마리아’에 대한 오랜 논박이

있었습니다. 오조사의 성모전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사의 어머니를 불상처럼 모신 사찰은 거의 없으니까요.

   

이런 논쟁 앞에서‘현문우답’은 눈을 감습니다.

그리고‘성모’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묵상해 봅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어머니, 낳아주신 어머니, 육신의 어머니,

형상의 어머니를 놓고 논박을 벌입니다. 그런데‘성모’란 말에는

이보다 훨씬 깊은 울림이 있습니다. 유대의 여인, 중국의 여인을

떠나서‘성모’의 뜻을 다시 묵상해봅시다.

그 울림의 정체는 과연 뭘까요.

 

그렇습니다.‘성모’는 진리를 낳은 곳입니다.

진리가 나온 곳입니다. 예수가 나온 곳이고, 깨달음이 나온

곳이기도 합니다. 그럼 거기가 어디일까요? 맞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그곳은 하느님(하나님)이고,

불자에게 그곳은 깨달음의 자리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하나님(하느님)은 형상이 없다”고 했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형상을 통해선 하느님(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나님(하느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어찌해야 예수가

왔던 곳, 예수가 갔던 곳, 지금도 예수가 있는 곳으로 녹아들 수 있을까요?

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하느님(하나님)은 형상이 없다”는 말 속에

이미 답이 있습니다. 우리가 잡고 있는 형상을 하나씩 놓으면 되는 겁니다.

눈으로 잡는 것만 형상이 아니죠. 나의 욕망과 집착 등 마음으로

잡는 것도 형상입니다. ‘성모 마리아상이 우상이냐, 아니냐’는

논쟁의 뿌리도 우리가 형상을 붙들고 있기에 빚어진 게 아닐까요?

오조사의 성모전에 대한 논란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를 유심히 보세요. 상하, 좌우가 무한대로 터져있습니다.

우리가‘십자’의 형상조차 붙들지 않을 때 십자가는 무한대로 터집니다.

그 자리에서 알파가 오메가가 되고, 처음과 끝이 하나가 됩니다.

‘현문우답’은 거기서‘성모(聖母)’라는 말에 담긴 뿌리를 묵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