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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영화 / 정호경

결국 낙향하고 말았지만, 처자를 거느린 지 십 년이 넘도록 남의 집 신세로 세월을 보낸 그 친구 집에 놀러 갔었다. 주인 방 바로 옆에 딸린 단칸 셋방살이였다. 얘기하는 우리들 옆에서 그 친구의 어린놈들이 뭔가 조심스럽게 장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후다닥하는 소리와 함께 한 놈이 밖으로 튀었다. 나머지 한 놈은 뒤로 약간 넘어진 채 천장을 쳐다보고 입만 딱 벌리고 있었다. 웃고 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셋방살이를 오래 하다 보니 애들이 저 모양이 되어 버렸네.' 쓸쓸이 웃음을 지으며 내뱉는 친구의 말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 가설극장에서 본 무성영화를 연상했다.

밍근이 / 송규호

밍근이는 오늘도 싱긋 웃는다. 짚뭇을 한 아름 안고 싱긋 웃으면서 창호네 돌담길을 돌아간다. 여든이 넘도록 장가 한번 가보지 못한 그에게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걱정거리라고는 없다. 두툼한 입술 위에 다갈색 수염 몇 개를 늘어세우고 다니는 그의 베잠방이 허리띠에는 언제나 곰방대가 매달려있다. 똥똥하여 힘깨나 있어 보이지만 워낙 꽤가 없어, 씨름 손만 잡으면 누울 자리부터 보고 주저앉은 밍근이다. 일생을 남의 집에서만 보내야하는 그에게는 돈도 법도 소용이 없다. 하물며 명예나 지위 같은 것이 그의 앞에서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겠는가. 손길이 야물지 못한 탓으로 가끔 소박 아닌 구박을 맞아도 투덜거리거나 옹알거리는 일이 없이 싱긋 웃으며 돌아서는 천성이다. “밍근이, 돼지는 왜 죽어?” “간 끄네 묵어놓고..

내 고향 / 윤오영

양근楊根 연양리延陽里는 내가 어려서 살던 고양이다. 해외에 나가 화려한 문명, 풍족한 도시에 살면서도 잊히지 않고 그리운 것은 황폐하나마 고국의 산천이라고 한다. 내 고향의 산천이 이다지 그리운 것도 반드시 산이 삼각산보다 웅장하고 물이 한강수보다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오직 정 깊었던 탓이다. 길건 짧건 기쁘나 슬프나 인생 백년은 하나의 여정旅程. 나그네의 향수는 물리칠 길이 없다. 조상 때부터 살아온 옛터에서 일생을 보내도 향수는 느끼려니, 동심을 키워준 고향이라 어찌 아쉽고 그립지 아니하랴. 나는 현실이 괴로울 때면 내가 왜 이 나라에 태어났던가. 남과 같이 외국에나 태어났다면 이렇게 괴롭지는 아니 하였으련만, 이 나라에 태어 난 것을 원망하고 미워도 해 본다. 차라리 국적을 바꾸고 외국에 귀화나 해..

모두가 빈자리 / 정호경

저녁놀이 곱게 물든 서녘 하늘에 갈가마귀 떼가 까맣게 날고 있었다. 어린 시절 이런 풍경은 문학이나 철학이나 또는 정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그저 아름답고 순수한 원시의 자연 풍경 그대로일 뿐이었다. 봄이면 채마밭에 장다리꽃이 노랗게 피지 않아도 평화로웠고, 여름이면 이 빠진 개가 부엌문 옆에 늘어져 낮잠을 자고 있지 않아도 한가로웠다. 아무런 다툴 것도 괴로운 것도 없는, 우러르면 눈이 시린 하늘이 있을 뿐이었다. 며칠 전 나는 부모님의 산소에 가서 벌초를 하고 돌아왔다. 올해는 비가 많아서인지 잡풀이 봉분을 엉성하게 덮고 있었고 무덤 한 쪽 모서리가 움푹 패어 있었다. 그리고 동생 무덤에는 아카시아가 뿌리를 박고 있었다. 아무리 독한 약을 써도 끄떡없었다. “괭이로 뿌리째 파버려야 되겠구먼” 하니..

대추나무/ 손광성

대추나무 같이 볼품이 없는 나무가 또 있을까? 마당을 서성거리다가 우연히 대추나무와 마주칠 때마다 늘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벚나무 같은 화사함도 없고 느티나무나 은행나무 같은 위용도 없다. 그렇다고 가을이면 다른 나무들처럼 곱게 단풍이 드는가 하면 그렇지도 못해서 언뜻 보기에 아카시아나무로 착각하기 십상이다. 게다가 가지는 고집스럽게 뻗어서 조화와 균형을 잃고 있다. 나무처럼 사랑스런 시는 없으리. 이렇게 노래한 시인이 있지만 아무리 뜯어보아도 대추나무에서는 시를 찾을 수 없을 듯싶다. 대추나무는 계절 밖에 산다. 봄이 와도 봄을 모르고 가을이 되어도 여름으로 착각하는 나무다. 개나리가 피고 진달래가 지고, 벚나무며 라일락 같은 꽃나무들이 불꽃놀이라도 하듯 온통 분홍과 보라색을 내뿜으며 부산을 떨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