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수필

발바닥이... / 김수봉

윤소천 2014. 1. 22. 21:23

 

 

 

 

 한동안 연락이 뜸해진 친구에게 전화를 넣어봤다.

“뭐 하고 지내는가?”

 한참을 미루적거리더니,

“으음 저..., 발바닥 껍질 뜯고 앉아 있네.”

 무료하게 지내고 있다는 응답치고는 어지간히 걸작이었다.

 

 직장 정년퇴임을 하고도 몇 년이 됐으니 출근에 바쁠

일도, 허구한 날 친구를 만나 노닥거릴 ‘껀수’도 없을 테니

집에 앉아 있으면 멋쩍은 사람이 되어 발바닥이나

문지르다가 껍질을 뜯어내는 버릇이 생겼음이리라. 이 친구의

말을 듣고 보니 나도 별 다를 게 없었다. 나이 들어가면서

신체 세포의 성장은 더디어지고 표피는 날로 각질이 되어간다.

특히 온몸의 무게를 지탱하고 다니는 발바닥은 더 많은 

굳은살이 박인다. 목욕탕 갈 때에는 더운물에 잘 불린 발바닥

각질층을 벗겨내고 깎아내는 일이 여러 번 있었다.

요즘은 해면돌이나 각질 제거하는 도구들도 흔하게 팔고

있어서 때때로 사용하고 있다. 굳은살을 벗겨내면

한결 반질반질해져서 얼마간은 끌밋하고 개운하다.

그러나 그 일은 또다시 되풀이 된다.

 

불필요한 것은 버려야한다는 것, 세상살이도 이와

같은 것이 아닐까. 한 때 내 몸에 붙어있던 것이 나를 떠나듯,

내가 가진 것들을 하나씩 깎아내고 덜어내면 삶은 한결

반질반질해지고 홀가분해지리라. 지난날 긴요하다고만 알고,

 욕심 부려 모으며, 지니며, 누리며, 소유했던 것들이

귀찮음으로 여겨져야 한다. 그것이 나를

속박한 것들이었음을 깨달아야 한다.

 

 강가를 산책하다가 앙증스러운 석영石英 하나를 주웠다.

매끈매끈한 투명한 차돌이었는데 어찌 보면 달마 같은 모습이

재밌었다. 한동안 즐겁게 놓아두고 보면서 흐뭇해하고

나만이 가졌다는 긍지도 느껴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내 것이 아니었음을 알았다.

그래서 다시 그 강가를 찾아가 슬그머니

그 자리에 놓아두고 온 일이 있다. 

 

지금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서 언제나 내 것은

아니다. 영원한 내 것은 없는 것. 단 하나 뿐인 나의 가장 소중한

것도 마침내 버리고 떠나야 하는 것처럼. 각질을 벗겨내듯

버리고 놓아두고 가는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다. 그래야 삶의 끝이

반질반질해진다. 비 내리는 날, 연잎도 빗방울을

모았다가 비워버려야 산들바람에 아름답게 한들거리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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