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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창 / 서연정

불투명한 의미가 적운처럼 쌓인 시절 암흑을 몰아내는 투명한 생의 주문 서창(西窓)에 봄 들어오자 마른 산이 부푼다 바람에 흔들려도 사랑은 청밀 범벅 산에서 날아오는 노래가 달콤쌉쌀하다 껴안고 거느린 그늘 온몸으로 꽃이다 모자 속의 모자는 성장한 기억인 것 아끼던 모자들을 공손하게 벗는다 서쪽에 산그늘 내리면 기념하듯 하나씩 서창이 액자처럼 석양을 갈아 끼운다 뜨거운 묵도 속에 별을 보는 사람아 기약은 먼 하늘 소관 우리 소임은 나그네

읽고 싶은 시 2022.08.15

헤프닝 / 위 증

「이 엘리베이터 안에 우리 둘이 갇힌다면 어찌 될까」 ㅡ 짖궃은 기집애 ㅡ 「그렇게 된다면야 내가 너를 잡아먹겠지」 「그으레! 어디 한 번 잡아 먹어봐. 자 어서 잡숴 봐. 어서」 ㅡ 내 옆구리를 쥐어 박던 기집애ㅡ 헌데 불현듯...... 정말 기계 고장이라도 나서 진짜 단둘이 갇힌다면...? 그렇게 된다면 어찌 될까 아마 서로 멋쩍은 듯 눈길을 피하며 머뭇거리다가 돌아서서 허둥지둥 비상벨을 누르겠지 기껏 그냥 그런 선에서 싱거운 헤프닝으로 막을 내렸겠지 ㅡ보고싶다 그 기집애ㅡ 지금쯤 애 엄마 되어 주렁주렁 방울들 매달고 험한 세상 길 허덕이며 건너겠지

읽고 싶은 시 2022.08.11

무중력 / 위 증

우주비행사들이 무중력 공간을 둥 둥 떠다니는 영상을 볼때마다 호숩고 재미있다 나도 허드레 무게 다 벗고 저렇게 한 번 둥 둥 떠봤으면 좋겠다 버둥거리며 무릎을 깨고 코피 터지며 쫓고 쫓기면서 거머쥔 오만 잡동사니 다 털고 저렇게 무중력으로 한 번 둥 둥 떠봤으면 좋겠다 서로 앞뒤와 위아래가 따로 없는 무중력으로 뒤집히며 엇바뀌며 모로 돌고 거꾸로 뜨는 세상 한 번 봤으면 좋겠다 어릴적 가랑이 사이로 고개를 박고 가꾸로 바라보면 그 희안한 세상 하늘과 땅이 뒤집히던 세상으로 어디 한 번 둥 둥 떠봤으면 좋겠다

읽고 싶은 시 2022.08.11

두려워하지 말자 / 법 정

산중에 외떨어져 살면서 내가 흔히 받는 질문 중 하나는, 혼자서 외진 곳에 살면 무섭지 않느냐다. 무서워하면 홀로 살 수 없다. 무서움의 실체란 무엇인가.무서움의 대상보다는 마음의 작용에 의해 무서움이 일어난다. 밤이나 낮이나 똑같은 산중 환경, 다만 조명상태가 밝았다 어두웠다 할 뿐인데 마음에 그림자가 생기면 무서움을 느낀다. 자연을 정복의 대상이나 수단으로 여기지 않고 살아있는 생명체로 대한다면 그 품은 한없이 너그럽다. 무섭기는 갑자기 돌변하는 인간의 도시다. 예측할 수 없는 돌발적인 사건 사고가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두려움의 실체 보다는 두려워하는 그 마음이 상황을 더욱 나쁘게 만든다. 두려움은 몸의 근육을 마비시키고 혈액순환에도 영향을 미쳐 정상적이고 건강한 생명의 활동을 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