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와 낙타 / 김효비아
나, 달팽이 언젠가 낙타의 등을 타고 고비로 가는 꿈을 꾸었다 사막의 웅덩이에서 빠져죽은 당나귀도 보았다 낙타는 당나귀에게 사막을 걷는 법을 가르쳐 준 적이 있었다 낙타에게도 트라우마가 있다면 실크로드의 낭떠러지에서 미끄러진 기억 뿐이다 평생 아랫목에 누워 잠을 잔 적이 없는 낙타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모래폭풍의 한 가운데를 통과하여 오아시스로 가는 지름길을 찿아내는 것만이 그나마 서러운 존재로 화인을 찍을 것이다 어느 날, 낙타는 햇살에 멀미를 하면서도 신기루가 왜 허상인지를 맨발로 체험하고 싶은 달팽이를 만났다 모래꽃을 본 적이 없는 달팽이 대신 어린왕자와 사막여우와 어울리는 꿈을 꾸고 싶었다 달팽이는 눈 먼 세상을 더듬으며 바람의 언덕까지 혼자 올라갔다 그날 밤, 발길질하는 낙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