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바다를 못 읽다
바다에 와서 바다를 읽어봤다.
바다의, 망망함을 물빛을 물비늘을 깊이를
수평선을 파도를 해일을......
물의 변신 물의 언어를,
물에 쓰이는 상형문자를,
해독할 수 없는 태초의 말씀을,
방대한 바이블을
태초의 언어로 된 태초의 경전
창조신의 말씀책을
알아 못 듣는 목소리로 갈매기가 읽고 가도
알아 못 듣는 목청으로 바람이 읽고 가도
나의 문맹(文盲)은
어느 구절에다 붉은 줄을 그어야 할지
어느 페이지를 접어두고
어느 대목을 괄호쳐둘지 몰라
바다에 와서 바다는 못 읽어도,
내가 알아낸 건, 바다야 말로 하늘이라고,
하늘이기 때문에 읽어내지 못한다고,
밤이 되자 바다는 달과 별무리
찬란한 하늘이었으니,
아무리 올라가도 하늘밑일 뿐이던 그 높이가,
눈 아래 두 발 아래 내려와 펼쳤나니,
가장 낮은 데가 가장 높은 곳이라는,
어렴풋한 짐작 하나 겨우 얻은 것 같다.
'읽고 싶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꽃으로 잎으로 / 유안진 (0) | 2015.06.14 |
---|---|
밤 / 유안진 (0) | 2015.06.11 |
누 더 기 / 정호승 (0) | 2015.06.04 |
어머니를 위한 자장가 / 정호승 (0) | 2015.05.31 |
물의 꽃 / 정호승 (0) | 2015.05.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