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 박두진 숲 푸른 넝쿨들은 늙은 정정한 나무를 감으며 더 높은 하늘을 만져보기 위하여 위으로 위으로 손을 뻗쳐 기어오르고, 골짜구니 샘물 넘쳐 흘러, 언젠가 꿈꾸던 먼 망망한 바다의 아침의 해후를 위하여 낮은 데로 낮은 데로 지즐대며 내려간다. 나래 고운 새들은 오늘의 사랑과 어쩌지 못.. 읽고 싶은 시 2019.08.16
풀꽃과 놀다 / 나태주 풀꽃과 놀다 그대 만약 스스로 조그만 사람 가난한 사람이라 생각한다면 풀밭에 나아가 풀꽃을 만나보시라 그대 만약 스스로 인생의 실패자, 낙오자라 여겨진다면 풀꽃과 눈을 포개보시라 풀꽃이 그대를 향해 웃어줄 것이다 조금씩 풀꽃의 웃음과 풀꽃의 생각이 그대 것으로 바뀔 것이.. 읽고 싶은 시 2019.08.12
큰 일 / 나태주 큰 일 조그만 너의 얼굴 너의 모습이 점점 자라서 지구만큼 커질 때 있다 가느다란 너의 웃음 너의 목소리가 점점 커져서 지구를 가득 채울 때가 있다 이거야말로 큰일, 사랑이 찾아온 것이다. 읽고 싶은 시 2019.08.04
화전민의 꿈 / 구상 화 전 민 의 꿈 태양의 용광로가 엎질러 쏫아지는 밀림 속에다 김치돌만한 부시로 두꺼비손을 깨면서 생불을 지른다 충천하는 불길 ! 삽시에 정글은 불바다다. 로스케나 양키같이 하늘로 치솟는 거목들과 기름 가마에 절은 胡人(호인)녀석의 아름드리 古木들과 지난 세월 狂氣의 의미도 .. 읽고 싶은 시 2019.07.28
봄 길 / 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읽고 싶은 시 2019.07.23
신령한 새싹 / 구 상 그다지 모질던 회오리바람이 자고 나의 안에는 신령한 새싹이 움텄다. 겨울 아카시아모양 메마른 앙상한 나의 오관(五官)에 이 어쩐 싱그러움이냐? 어둠으로 감싸여 있던 만물들이 저마다 총총한 별이 되어 반짝이고 그물코처럼 엉키고 설킨 사리(事理)들이 타래실처럼 술술 풀린다. 이제 나에게는 나고 스러지는 것이 하나도 가엾지가 않고 모두가 영원의 한 모습일 뿐이다. 때를 넘기면 배가 고프고 신경통으로 사지(四肢)가 쑤시기는 매한가지지만 나의 안에는 신령한 새싹이 움터 영원의 동산에다 피울 새 꽃을 마련하고 있다. 읽고 싶은 시 2019.07.16
침 묵 / 이해인 맑고 깊으면 차가워도 아름답네 침묵이란 우물 앞에 혼자 서보자 자꾸자꾸 안을 들여다보면 먼 길 돌아 집으로 온 나의 웃음소리도 들리고 이끼 낀 돌층계에서 오래오래 나를 기다려온 하느님의 기쁨도 찰랑이고 "잘못 쓴 시간들은 사랑으로 고치면 돼요" 속삭이는 이웃들이 내게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고 고마움에 할 말을 잊은 나의 눈물도 동그랗게 반짝이네 말을 많이 해서 죄를 많이 지었던 날들 잠시 잊어버리고 맑음으로 맑음으로 깊어지고 싶으면 오늘도 고요히 침묵이란 우물 앞에 서자 읽고 싶은 시 2019.07.10
바 다 새 / 이해인 이 땅의 어느 곳 누구에게도 마음 붙일 수 없어 바다로 온 거야 너무 많은 것 보고 싶지 않아 듣고 싶지 않아 예까지 온 거야 너무 많은 말들을 하고 싶지 않아 혼자서 온 거야 아 어떻게 설명할까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은 이 작은 가슴의 불길 물 위에 앉아 조용히 식히고 싶어 바다로 온 거야 미역처럼 싱싱한 슬픔 파도에 씻으며 살고 싶어 바다로 온 거야 읽고 싶은 시 2019.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