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시

달 밤 - 세한도(歲寒圖)에 붙여 / 김효비아

윤소천 2022. 9. 16. 07:45

 

 

 

 

내 나이 종심(從心)이 되었을 때

'추사의 졸(拙)'같은 거울을 빌려 쨍쨍한 몰골을 보아야겠다

벌거숭이 임금님 옷자락을 슬그머니 탐낸 적도 있었다

나는 무아지경에 탐닉한 비계덩어리 치부를 어떻게 가릴까

누더기 마파람에 게눈처럼 오지랖을 여미기나 했을까

 

설마하니, 나에게도 이상적(李尙迪) 같은 동무 하나 있다면

세한도(歲寒圖)의 우정을 맹세해 볼 것인가

조무견(曺楙堅)은 세한도에 화답하고자 수선화를 시로 지었다하고,

조진조(趙振祚)는 꿩이 집을 안 짓는 것은

그 정신의 뿌리를 보존하기 위함이다 하였거늘

나는 엉거주춤 청맹과니로 실사구시(實事求是)나 따라 해볼까

 

나도 정녕 소나무 같은 그대를 만나

벼루에 구멍이 나도록 동자체(童子體)를 배울까

바위틈에서 서릿발을 삼킨 송백을

배경삼아 동자처럼 엎드려 추사체(秋史體)를 배울까

 

그러다 '장무상망(長毋相忘)'의 그대를 만난다면

까마귀 우는 삼동에도 끄덕없는 잣나무가 되리라

하여 나는 

설사 위리안치(圍籬安置)의 삶이,

복병처럼 도사린 첩첩산중이라 하더라도

소나무와 잣나무를 길벗 삼을지니...

어지러진 달빛에나 그대를 실컷 추앙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