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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말하라면 / 김현승

인생을 말하라면 모래 위에 손가락으로 부귀(富貴)를 쓰는 사람도 있지만 인생을 말하라면 팔을 들어 한 조각 저 구름 뜬 흰구름을 가리키는 사람도 있지만 ​ 인생을 말하라면 눈을 감고 장미 아름다운 가시 끝에 입맞추는 사람도 있지만 ​ 인생을 말하라면 입을 다물고 꽃밭에 꽃송이처럼 웃고만 있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 인생을 말하라면 고개를 수그리고 뺨에 고인 주먹으로 온 세상의 시름을 호올로 다스리는 사람도 있지만 ​ 인생을 말하라면 나와 내 입은 두 손을 내밀어 보인다, 하루의 땀을 쥔 나의 손을 이처럼 뜨겁게 펴서 보인다. ​ 이렇게 거칠고 이렇게 씻겼지만 아직도 질기고 아직도 깨끗한 이 손을 물어 마지않는 너에게 펴서 보인다.

읽고 싶은 시 2023.03.30

개나리꽃 핀다 / 신달자

바람 부는 삼월 진회색 개나리 가지들 속에서 노오란 머리 비집고 나오는 신생아들 순금의 아기 부처들이 지난해 못다 준 말씀들 세상에 와르르 쏟아 내고 계시네 온몸으로 순금의 등을 켜고 거리에서 순금의 자비를 내리신다 화가 잔뜩 난 사람들 여기를 봐라 하늘의 선물로 내린 빛의 아기들 세상을 순화시키려고 거리마다 신생아실을 두었다 절하라 거기가 어디든 모두 법당 안이다 아기 부처들을 태운 황금 열차가 세상의 거리를 달려간다 삼월 설법으로 개나리꽃 핀다.

읽고 싶은 시 2023.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