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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벗이 몇 인가 하니 / 구 활

​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란 그 말씀 너머에 자연이 존재한다. 무슨 말이냐하면 세파의 인정에 넌덜머리가 난 사람들은 더 이상 '사회적 동물'이기를 포기하고 도망치듯 자연 속으로 숨어들어 은자가 된다는 말이다. 고향을 포함하여 넓은 의미의 자연은 어머니의 자궁과 가장 밀접하게 닮아 있기 때문에 일상이 고단한 이들은 자연의 품에 안겨야 비로소 안정과 휴식을 얻을 수 있다. 몇 푼의 봉록이 걸려있는 관직생활에 심신이 피로해진 도연명은 불후의 명작인 '귀거래사'를 읊으며 고향으로 돌아갔으며, 회재 이언적도 김안로와의 권력투쟁에 밀려 안강 자옥산 기슭에 독락당을 짓고 7년이나 은둔생활을 해야 했다. 그리고 고산 윤선도도 젊은 패기에 푸른 꿈이 있었지만 당쟁의 세력 다툼이 싫어 보길도로 들어가 자연 속으로 회귀..

나팔꽃 / 나태주

담벼락 가파른 절벽을 벌벌 떨며 기어올라간 ​ 나팔꽃의 덩굴손이 꽃을 피웠다 눈부시다 성스럽다 ​ 나팔꽃은 하루 한나절을 피었다가 꼬질꼬질 배틀려 떨어지는 꽃 저녁 때 시들기 시작하더니 다음날 아침 자취조차 없어졌다 ​ 그러나 빈 자리 그 어떤 덩굴손이나 이파리도 비껴서 갔다 나팔꽃 진 자리 더욱 눈부시다 성스럽다 가득하다

읽고 싶은 시 2023.08.20

무소유의 극치 / 황동규

​ 소유와 소유욕이 얽히고 설킨 세상에 살다 보면, 무소유의 세계가 그리워지고, 무소유의 삶을 온몸으로 살다 간 선인들이 그리워지곤 한다. 우리나라에도 원효나 김시습 같은 무소유의 멋쟁이 구걸승이나 방랑자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사람들이 무리지어 살았던 시기와 장소는 당나라 후기와 송나라 초기의 중국이 아니었나 싶다. 그때 한산(寒山)이나 방거사(龐居士) 같은 명품은 말할 것도 없고 오가(五家) 칠종(七宗)의 거의 모든 선승들이 소유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삶을 살았던 것이다. 선승들의 이야기는 거의 다 개성 있는 빛을 지니고 있다. ]그 많은 독특한 빛들 속에 가장 강렬한 것 가운데 하나는 조주(趙州)스님과 투자(投子) 스님 사이의 첫 만남 장면이다. 당시 조주는 맨몸으로 방랑을 하고 있었고 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