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수필 144

여름밤 / 노천명

앞벌 논가에서 개구리들이 소낙비 소리처럼 울어대고 삼밭에서 오이 냄새가 풍겨오는 저녁 마당 한 귀퉁이에 범산넝쿨, 엉겅퀴, 다북쑥, 이런 것들이 생짜로 들어가 한데 섞여 타는 냄새란 제법 독기가 있는 것이다. 또한 거기 다만 모깃불로만 쓰이는 이외의 값진 여름밤의 운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달 아래 호박꽃이 화안한 저녁이면 군색스럽지 않아도 좋은 넓은 마당에는 이 모깃불이 피워지고 그 옆에는 멍석이 깔려지고 여기선 여름살이 다림질이 한창 벌어지는 것이다. 멍석자리에 이렇게 앉아 보면 시누이와 올케도 정다울 수 있고, 큰 애기에게 다림질을 붙잡히며, 지긋한 나이를 한 어머니는 별처럼 머언 얘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함박지에는 가주 쪄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강냉이가 먹음직스럽게 담겨 나오는 법이겠다. 쑥대불..

그 믐 달 / 나도향

나는 그믐달을 몹시 사랑한다. 그믐달은 너무 요염(妖艶)하여 감히 손을 댈 수도 없고 말을 붙일 수도 없이 깜찍하게 예쁜 계집 같은 달인 동시에 가슴이 저리고 쓰리도록 가련한 달이다. 서산 위에 잠깐 나타났다 숨어버리는 초생달은 세상을 후려 삼키려는 독부(毒婦)가 아니면, 철모르는 처녀 같은 달이지마는 그믐달은 세상의 갖은 풍상(風霜)을 다 겪고 나중에는 그 무슨 원한(怨恨)을 품고서 애처롭게 쓰러지는 원부(怨婦)와 같이 애절(哀絶)하고 애절한 맛이 있다. 보름의 둥근 달은 모든 영화와 끝없는 숭배를 받는 여왕 같은 달이지마는, 그믐달은 애인을 잃고 쫓겨남을 당한 공주(公主)와 같은 달이다. 초생달이나 보름달은 보는 이가 많지마는, 그믐달은 보는 이가 적어 그만큼 외로운 달이다. 객창한등(客窓寒燈)에 정..

한 송이 수련 위에 부는 바람처럼 / 손광성

수련을 가꾼 지 여남은 해. 엄지손가락만한 뿌리를 처음 얻어 심었을 때는, 이놈이 언제 자라서 꽃을 피우나 싶어 노상 조바심이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자꾸 불어나서 이웃과 친지들에게 나누어 주고도 지금 내 물둠벙은 수련으로 넘친다. 나누어 줄수록 커지는 것은 사랑만이 아닌 것 같다. 게다가 가져간 분들로부터 첫 꽃이 피었다는 전화라도 오는 날은 마치 시집간 딸의 득남 소식이 이러려니 싶을 만큼 내 마음은 기쁨으로 넘친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 때도 있다. 말려서 죽이지 않으면 얼려서 죽인다. 그런 때는 소박을 맞은 딸을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난을 탐내는 사람은 많아도 제대로 가꾸는 사람은 드물더라는 가람 선생의 말씀이 그 때마다 귀에 새로웠다. 수련은 유월과 팔월 사이에 핀다. 맑은 수면 위에..

하나의 풍경 / 박연구

찌는 듯이 더운 날씨에 아이 할아버지는 웬 절구통을 사오셨다. 메주콩도 찧어야 할 것이고 언제부터 벼르던 차에 좋은 돌절구통을 만났기에 들여온 거라 말씀하시기에 자세히 보니까 가짜 돌절구였다. 이 무거운 걸 버스 종점에서부터 메고 왔다는 인부에게 절구통값 오천 오백원을 얼른 내주라고 하셨을 때도 나는 차마 아버지께서 속으신 것이니 대금을 치르지 못하겠다는 말씀을 드릴 수가 없었다. 땀으로 뒤범벅이 된 인부의 얼굴보다도 그처럼 좋아하시는 아버지에게 사실대로 알려 드린다는 것이 죄송스러운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아니 계시니까 아버지가 시어머니 몫의 배려(配慮)까지 하시었다. 김장철이 임박하면 비싸니까 고추나 마늘을 미리미리 사두라는 등 자상하신 데가 있었다. 절구통을 보니까 시골집의 나무 절구통이..

가슴에서 피워올린 봄 한자락 / 신달자

자연의 숨결소리를 정작 귀로 듣는 계절은 다름 아닌 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니 그 말은 틀린 말인지 모른다. 자연의 숨결을 듣는 것은 귀뿐만이 아니라 가슴이며 눈이라고 덧붙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자연의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은 귀나 눈이나 가슴의 부분적인 것은 아닐 것이다. 봄은 역시 온몸으로 다가오고 온몸으로 느끼는 자연의 강렬한 만남인 것이다. 봄을 젊음의 계절로 단정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은 큰 실수라고 지적되어야 한다. 봄은 특수한 사람들의 계절이 아니라 생명을 사랑하고 삶을 아끼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는 모든 사람의 충만한 계절인 것이다. 겨우내 가정살림에서 동면의 답답함을 느꼈던 주부들도 봄의 창을 활짝 열고 새로운 계획으로 일어서야 할 때다. 주부들이야말로 봄의 ..

바라보는 봄 / 신달자

먼 산에 잔설이 아직 녹지 않은 채 바라다보이고 소매 끝을 스치는 바람이 맵고 옹골차지만 이미 우리들 마음속에 봄은 깊이 들어와 있는 듯하다. 겨울이 지루하게 느껴졌음일까 ? 봄은 언제나 가슴 두근거리게 하며 찾아오고, 하는 확인을 거듭하게 된다. 그런 봄은 역시 깨어나고 일어서고 그래서 더욱 미래 지향적인 희망을 노래하는 것으로 우리에게 인식되어 있다. 그러나 겨울잠에서 깨어나고 앉은뱅이 풀들이 푸른 꽃대를 지켜들고 일어서는 봄의 축제 외에도 결코 제외될 수 없는 귀중한 행사가 봄 속에는 꿈틀대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가 했던 말이지만 을 줄인 말로 바라보는 일 혹은 바라보는 정신의 계절이라고 단적으로 말할 수 있다. 황량한 겨울 들판, 때로는 죽음의 들판으로 비쳐왔던 그 땅 위에 생명이 넘실거리며 초록..

마음의 날개 / 신달자

날개는 새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마음속에도 날개는 있다. 그러나 우리들 마음속 날개는 태어날 때부터 갖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마음의 날개를 부모님이나 스승 혹은 친구가 달아 주는 것도 아닐 것이다. 우리들 마음속 날개는 바로 나 자신이 다는 것이다. 이 날개는 특별한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것은 결코 아니며, 가지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누구라도 이 날개를 소유할 수 있는 그런 날개다. 그러나 이 마음의 날개는 그 마음씨나 행동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던 무조건 갖게 되는 그런 날개는 아니다. 물론 이 날개를 갖는 데는 어떤 조건이 따른다. 그 조건은 까다롭지 않다. 아니 아주 쉬운 조건이다. 첫째로는 자기를 사랑해야 한다. 자기를 아끼고 다듬는 사람이어야 한다. 둘째는 나 이외의 사람에게 순조..

봄 나무가 보여 주는 풍경 / 도종환

폭설에 부러진 겨울나무 가지 곁에 새 움이 돋는다. 겨우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동안 쪼글쪼글 오그라진 산수유 열매들을 매단 채 노오란 산수유꽃이 피어난다. 잎이 다 떨어져 나가 엉성해 보이던 벤자민 나무에도 연두빛 새잎이 다시 돋는다. 말없이 봄을 만들어 가는 나무들이 대견하다. 사람들 같으면 모진 시간들을 견뎌오며 엄살이 많았을 것이다. 자책도 많았을 것이다. 때론 내가 조심하지 않아서, 내가 무능력해서 가지를 부러뜨렸을 것이라고 탄식하며 자신을 괴롭혔을지도 모른다. 벌판에 뿌리를 내려야 했던 자신의 운명을 탓하기도 하고,열매도 거두어 주는 이도 없는 쓸쓸한 골짜기에 태어나게 한 어버이를 원망하기도 했으리라. 완벽하게 아름다운 꽃나무로 자라고 싶었는데 생각만큼 꽃이 아름답지 않았다고, 향기가 멀리가..

새벽종을 치면서 / 권정생

겨울의 새벽하늘은 참 아름답다. 종을 치면서 나는 줄곧 이 아름다운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 성에가 끼고 꼬장꼬장 얼어버린 종 줄을 잡은 손이 무척 시리지만, 나는 장갑을 끼지 않는다. 가장 효과적으로 종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역시 맨손으로 종 줄을 잡고 쳐야만 서툴지 않게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한 번 종 줄을 잡아당기는 데 정성이 가기 마련이다. 깨끗한 하늘에 수없이 빛나는 별들과 종소리가 한데 어울려 더없이 성스럽게 우주의 구석구석까지 아름다운 음악으로 채워지는 순간이다. 지난 한가윗날, 어릴 적에 도회지로 이사를 간 종희라는 아이가 오랜만에 고향에 다니러 왔다. 대학 2학년의 어엿한 숙녀가 된 종희는 내게 물었다. “집사님, 여기 계신지 얼마나 되셨어요?” “벌써 10년이 넘었구나.” ..

안동 톳제비 / 권정생

안동 톳제비는 익살맞은 장난꾸러기여서 두려운 대상이 아니라 놀이 친구처럼 정이 간다. 일본의 도깨비는 그 모양부터 사납고 흉하며 인간들에게 약탈과 살인까지 범하는 악귀인 데 비해 우리의 톳제비는 너무도 착하다. 술 취한 남자가 밤새도록 톳제비와 씨름을 하다 날이 센 뒤에 보니 버려진 디딜방아나 헌 빗자루였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오랜 세월 서로 몸을 비비며 사용해 온 빗자루나 디딜방아 같은 연장을 불에 태워 없애지 않는다. 그것들은 비록 나무토막이나 수수 대궁이긴 하지만 사람들을 위해 오랜 세월 수고해 준 것이니 함부로 다루지 못하는 영물이 되어 버린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신神이 되듯이, 사람을 위해 수고해 준 연장도 그 수명이 다하면 차이는 두지만 역시 신으로 인정해 준 우리네 조상들의 마음씨가 너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