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수필 144

수필의 맛 / 김수봉

수필은 상추쌈이다. 오뉴월 텃밭에서 우둑우둑 뜯어다가 생물에 헹궈낸 상추잎을 몇 잎씩 포개 놓고 찬밥 한 술에 된장, 풋고추를 툭 부질러 얹어 아귀 미어지게 눈 부릅뜨며 움질움질 씹는 그 삽상한 맛이야! 요즘 세상에 그 흔한 로스구이 고깃점을, 드레스같이 넓은 온상재배 상추잎에 감아 먹는 브르조아의 맛과도 다른 쌉싸래함이 곁들인 텃밭 상추의 맛! 여름 낮에 밭을 매던 할머니가 목화밭 고랑에서 뽑아 온 연한 열무 잎을 쌈해 먹는 푸성귀 맛도 거기에 버금가게 상큼한 맛이다. 한국의 수필은 떫지가 않다. 몽테뉴의 수필은 우리에게 위압감을 주고, 찰스 램의 그것은 우리를 당혹하게도 하지만, 김진섭의 수필은 우리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한다. 린위탕(林語堂)이 사색과 유머의 중간에선 변설(辨舌)이었다면, 이양하는 ..

금강산과 예술정신 / 최은정

천선대에 오르니, 환청의 소리가 울려 퍼진다. 동편제의 장쾌한 성음이 등등한 기세로 웅장하게 귓전을 때린다. 내지르는 상성이 맑은 공기 속에 귀곡성 같다. 기상이 넘쳐흐른다. 나는 지금 신의 정원에 온 것이다. 아 - 하면서 넋을 놓았다. 우리 민족의 영산인 금강산은 숲이 우거진 골짜기와 화강암 절벽들이 조화를 이룬 일만 이천 봉의 절경이다. 금강산은 화엄경에서 따온 이름이다. 화려하고 장엄한 산의 모습이 화엄의 세계와 같다 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가파르고 구불구불한 만물상 찾아가는 길엔 사연도 많다. 네 신선이 놀러왔다가 눌러 앉았다는 삼선암, 자리를 못 잡아 건너편에 서 있는 독선암. 귀신의 얼굴 같은 만물사의 수호신 귀면암, 만 가지 물상들을 보는 것 같다는 만물상을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보이기..

예순이 되면 / 최민자

예순이 되면 나는 제일 먼저 모자를 사겠다. 햇빛 가리개나 방한용이 아닌, 진짜 멋진 정장모 말이다. 늘 쓰고 싶었지만 겸연쩍어 쓰지 못했던 모자를 그 때에는 더 미루지 않으련다. 둥근 차양에 리본이 얌전한 비로드 모자도 좋고 햅번이나 그레이스 켈리가 쓰던 화사한 스타일도 괜찮을 것이다. 값이 조금 비싸면 어떠랴. 반세기 넘게 수고한 머리에게 그런 모자 하나쯤 헌정한다 해서 크게 사치는 아닐 것이다. 이미 위에 얹힌 둥그런 차양이 부드러운 음영을 눈가에 드리우면 평범한 내 얼굴도 조금은 기품 있게 보일지 모른다. 가을바람이 가볍게 살랑거리는 날, 모자를 쓰고 저녁 모임에 나가 나보다 젊은 후배들을 향하여 따뜻하게 웃어 주고 싶다. 새로운 인연을 만드는 대신 격조했던 사람들과 더 자주 만나고 싶다. 오래 ..

얼 굴 / 조경희

얼굴은 가지각색이다. 둥근 얼굴. 긴 얼굴. 꺼먼 얼굴. 하얀 얼굴. 누런 얼굴 다 각각 다르다. 얼굴은 바탕과 색깔이 다를 뿐만이 아니라 얼굴을 구성하고 있는 눈. 코. 입, 어느 한 부분이나 똑같지가 않다. 이렇게 똑같지 않은 얼굴 중에서 종합적으로 잘 생긴 얼굴 못 생긴 얼굴을 발견 할 수 있는 것과 생김새는 잘 생겼든 못 생겼든 인상이 좋고 나쁜 것이 표정의 초점을 이루는 것이다. 첫인상이 우락부락하게 생긴 얼굴이지만 자주 만날수록 그 우락부락한 모습은 깨끗이 사라지고 차차 좋아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얼핏 보아서 첫눈에 들었는데 두 번 세 번 볼수록 싫어지는 얼굴이 있다. 지금도 내 생김생김이 퍽 인상이 나쁘지만 일찍이 나는 얼굴이 예쁘지 못해서 비관까지 한 적이 있었다. 여학교 일학년 때라고..

멀리 가는 물 / 정성화

강이 흐르는 마을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가 강에서 낚시를 하는 동안 나는 망초꽃이 핀 강둑에 앉아 강물이 흘러가는 것을 내려다보곤 했다. 그러다 심심하면 도시락을 쌌던 종이로 작은 배를 접어 강물에 띄웠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종이배는신이 난 듯 제 몸을 흔들며 강 아래쪽으로 흘러갔다. 강은 스스로 멀리 가는 물이면서 멀리 데려다 주는 물이었다. 문학 또한 멀리 가는 물이다. 여러 장르의 작품들이 모여 큰 강을 이루며 이 시대의 낮은 곳을 거쳐 흘러간다. 낮은 곳에 웅크리고 있는 눈물이나 한숨, 절망까지 끌어안고 함께 흘러가는 강물, 흘러갈 힘을 잃거나 방향을 잃은 채 돌이나 모래톱에 기대어 있던 물줄기까지 업고 가는 강물이다. 그래서 나는 강이 좋다. 글을 쓰는 것이 그 물줄기에 섞여들고..

비 오는 날의 산책 / 손광성

비가 내린다. 비가 오는 날은 마음이 가라앉는다. 낮게 떠있는 구름, 명주실처럼 부드러운 빗줄기, 그리고 나직한 빗소리, 창가에 턱을 괴고 앉아 빗속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부풀어 있던 감정의 보풀들도 비에 젖어 차분히 가라앉는다. 화창한 날에 느끼던 그런 외로움 같은 것도 없다. 비는 창가에 와서 속삭이고, 마음은 귀를 열어 그 속삭임을 듣는다. 전에 아무도 그처럼 내밀한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이 없기에 온몸을 기울여 받아들이고 싶은 것이다. 이런 날은 오래 전에 끊었던 담배도 예외로 해두고 싶다. 그리고 한 잔의 커피, 이따금 바람에 실려 오는 물보라의 찬 기운 속에 느끼는 커피의 따스한 온기와 그 진한 향기, 잠시 커피 잔 언저리에 어리는 우수의 그림자. 희미한 그림자와 함께 빗줄기 사이로 꼬리를 끌며 ..

어둠을 바라보며 / 정목일

산골의 밤은 잘 익은 머루 냄새가 난다. 덕유산 깊숙이 들어앉은 영각사의 저녁 예불이 끝날 즈음이면, 문득 하산하는 주지 스님의 장삼자락 빛 산그리메...... 산그리메에 묻어오는 머루 빛 적막. 그 산그리메가 이끌고 오는, 측량할 길 없는 어둠의 밀물. 산골짜기와 사방에 와 잠겨 버리는 어둠은, 화선지의 먹물처럼 번지어 빛과 소리를 정적의 깊은 수렁에 내몰고, 자물쇠를 잠그고, 고즈넉이 돌아온다. 나는 간혹 그 어둠과 만나기를 좋아한다. 어둠과 만나는 산과 나무의 묵시의 얼굴, 고요히 눈을 감고 생각의 깊은 심연에 빠져들어, 이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무언가 본질적인 근원을 생각나게 하는, 이런 어둠을 좋아한다. 주위는 무한히 펼쳐지는 어둠과 정적이 교직하는, 돌을 던지면 풍덩 소리가 날듯 ..

지란지교(芝蘭之交)를 꿈꾸며 / 유안진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 놓고 열어 보일 수 있고, 악의 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가... 사람이 자기 아내나 남편, 제 형제나 제 자식하고만 사랑을 나눈다면 어찌 행복해질 수 있으랴. 영원이 없을수록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 돕는 진실한 친구가 필요하리라. 그가 여성이어고 좋고, 남성이어도 좋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좋고 동갑이거나 적어도 좋다. 다만 그의 인품이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중년 이후 / 소노 아야코

중년이란, 이 세상에 신도 악마도 없는 단지 인간, 그 자체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시간이다. 긍정적으로 느껴지던 일들조차도 이런 경우 저런 경우를 생각하다보면 단점이 보이기도 한다. 이럴 때 인간은 가치판단의 체계가 혼돈스러워지고 좋은지 나쁜지도 단정하기 어렵게 된다. 이러한 혼란스러움, 바로 이것이 중년 세계에서 느낄 수 있는 은은한 매력이다. 모든 것에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그러므로 중년 이후가 말 그대로 진정한 인생이다. 정의라는 것이 소박한 인간의 행복 앞에서 ‘과연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중년이다. 여자든 남자든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 외양이 아닌 그 사람 어딘가에서 빛나고 있는 정신, 혹은 존재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

멀리서 가까이서 / 김태길

멀리서 바라보면 아름다우나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면 실망을 주는 것은 잔디밭만이 아니다. 지붕 위에 고추를 널어 놓은 초가집 또는 갈매기 날아드는 선창가는 멀리서 바라보는 눈에는 더없이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 보면, 거긴 가난에 찌든 괴로움이 있고, 죽은 물고기의 악취가 있다. 사람의 모습은 자연의 모습보다도 원경과 근경의 차이가 더욱 심하다. 멀리서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또는 그 사람의 글을 읽고 존경하는 심정을 금치 못하는 수가 있다. 존경은 사숙(私淑)으로 발전하고, 사숙은 직접 만나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처음 만나보았을 때는 감격이 더할 수도 있을지 모르나, 여러 번 만나게 되면 그도 보통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실망을 느낀다. 그러기에 서양의 속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