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수필

예순이 되면 / 최민자

윤소천 2015. 8. 1. 05:24

 

 

 

 

예순이 되면 나는 제일 먼저 모자를 사겠다. 햇빛 가리개나

방한용이 아닌, 진짜 멋진 정장모 말이다. 늘 쓰고 싶었지만 겸연쩍어

쓰지 못했던 모자를 그 때에는 더 미루지 않으련다. 둥근 차양에

리본이 얌전한 비로드 모자도 좋고 햅번이나 그레이스 켈리가 쓰던

화사한 스타일도 괜찮을 것이다. 값이 조금 비싸면 어떠랴.

 반세기 넘게 수고한 머리에게 그런 모자 하나쯤 헌정한다 해서 크게

사치는 아닐 것이다. 이미 위에 얹힌 둥그런 차양이 부드러운

음영을 눈가에 드리우면 평범한 내 얼굴도 조금은 기품 있게 보일지

모른다. 가을바람이 가볍게 살랑거리는 날, 모자를 쓰고 저녁

모임에 나가 나보다 젊은 후배들을 향하여 따뜻하게 웃어 주고 싶다.

 

새로운 인연을 만드는 대신 격조했던 사람들과 더 자주

만나고 싶다. 오래 못 뵌 스승과 선배 같은 후배와 밥 한번 먹자하고

삼 년이 지나버린 동창생을 찾아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다.

흩어져 사는 다섯 자매가 한 이불 속에 누워 옛날이야기로 밤을 새워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퍼즐을 맞추듯 조각난 기억들을

 잇대고 덧대며 멀어져간 날들을 더듬다 보면 한 꼬투리 안의

완두콩처럼 애틋하고 정다워질 것이다. 나무 심고 군불 지피며

욕심 없이 사는 산골 선배를 찾아가 며칠만 시름없이 노닥거리다

오고 싶다. 외바퀴 손수레에 막 팬 장작을 가득 싣고, 뒤뚱뒤뚱 앞마당을

가로질러 가면 눈매 고운 선배의 웃음소리가 울 밖으로 환하게

퍼져갈 것이다. 부지깽이를 들고 아궁이 앞에 앉아 타닥타닥 장작불을

어르다 보면 바깥세상 사소한 근심거리도 고운 재처럼

사위어져버릴 것이다. 야윈 달빛을 이불 삼아 아랫목에 노글노글

 허리를 지지며 흘러간 유행가라도 흥얼거리다 보면 젊은 날

지키지 못한 약속이 생각나 불현 듯 쓸쓸해질지도 모른다.

 

가끔 하루씩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내고 싶다.

해거름 풀밭에 신발을 벗어두고 떠가는 구름을 바라보거나, 햇살 좋은

창가에 기대앉아서 고양이처럼 느릿느릿 시간을 보내는 것도

욕심을 비워내는 한 방법일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비난받지 않는

 나이. 그러고 보면 늙는 것도 특권이다. 그런 특권을 마다하고

늙지 않으려 애면글면 하는 것도 아름답지 못한 노추의 극성이 아닐까.

양보도 하고 단념도 하며 약한 듯, 애처로운나이 들어가는 것도

노인다운 호신술일지 모른다. 그때쯤엔 나에게도 여자가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 타이틀이 주어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눈빛 어디, 점 하나,

어쩐지 나를 닮은 것 같은 아기의 얼굴을 마주하면서, 나는 어쩌면 이

아이의 할머니가 되기 위해 이제껏 살아왔다고 믿게 될지도 모른다.

여린 잇몸을 뚫고 솟은 새하얀 앞니와 머루같이 까만 아기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나는 비로소 여태 화해하지 못한 신에게도

 겸허하게 고개를 숙이게 될 것이다.

 

너그럽고 우아한 안노인의 모습을 상상하다보니 갑자기

노경이 친근한 이웃처럼 다가앉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안다.

예순 살이 되어도 일흔 살이 되어도 나는 여전히 나일 것임을. 서른의

나와 마흔의 내가 다르지 않았듯, 예순 살의 나도 쉰 살의 나를 한 치도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나는 여전히 우유부단하고, 남의 말에 상처를

잘 입고, 여럿이 어울리기보다는 혼자 놀기를 좋아하는 숫기 없는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사람의 성정이란

일생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주 실감하며 사는 까닭이다.

 

갈수록 수명이 길어지고 있는 요즘 인생은 육십부터라는 말이

 수사학적인 위안만은 아닐 것이다. 일상의 사슬에서 비껴 앉은 여유로

미루어 두었던 꿈을 향해 못 다한 열정을 살라보기에도 예순은

괜찮은 나이일지 모른다. 다만 나이를 벼슬 삼지 않고, 놀이터의

유리조각을 치울 줄 알며,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해 반보쯤은 양보할

아량이 있다면. 멋진 모자를 쓰고 음악회에 가지 못한다 하여도,

멀어진 꿈을 그러안고 수굿하게 시들어버린다 하여도, 탐욕스럽고

완고한 늙은이라는 소리만은 듣지 않고 살았으면 한다.

오래 입어 헐거워진 스웨터처럼 따스하고 편안하고 부드러워져, 가을 날

 언덕위의 은빛 억새처럼, 새들새들한 봄 사과처럼, 잘 탄 연탄재처럼,

남몰래 조금씩 물기를 말리며 남몰래 조금씩 가벼워지고 싶다.

 

 

'읽고 싶은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필의 맛 / 김수봉  (0) 2016.03.08
금강산과 예술정신 / 최은정  (0) 2016.03.05
얼 굴 / 조경희  (0) 2015.07.16
멀리 가는 물 / 정성화  (0) 2015.07.08
비 오는 날의 산책 / 손광성  (0) 2015.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