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 흐르는 마을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가
강에서 낚시를 하는 동안 나는 망초꽃이 핀 강둑에 앉아 강물이 흘러가는
것을 내려다보곤 했다. 그러다 심심하면 도시락을 쌌던 종이로
작은 배를 접어 강물에 띄웠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종이배는신이
난 듯 제 몸을 흔들며 강 아래쪽으로 흘러갔다. 강은 스스로
멀리 가는 물이면서 멀리 데려다 주는 물이었다. 문학 또한 멀리 가는
물이다. 여러 장르의 작품들이 모여 큰 강을 이루며 이 시대의
낮은 곳을 거쳐 흘러간다. 낮은 곳에 웅크리고 있는 눈물이나 한숨,
절망까지 끌어안고 함께 흘러가는 강물, 흘러갈 힘을 잃거나
방향을 잃은 채 돌이나 모래톱에 기대어 있던 물줄기까지 업고 가는
강물이다. 그래서 나는 강이 좋다. 글을 쓰는 것이 그 물줄기에
섞여들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흐르고 흐르면서 스스로 깊어지는 강물,
묵언수행으로 더 맑아지는 강물과 어우러지는 게 좋아서다.
그러나 나는 자주 흐름을 멈춘 채 한 자리를 맴돌거나
물풀더미를 덮어쓴 채 강바닥을 기고 있다. 그러면서도 내가 이 강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힘들 때마다 달려오던 곳이며,
세상을 향한 적의(敵意)와 원망을 토로하던 곳, 그리고 꺾인 내 무릎을
다시 일으켜 세우던 곳이기 때문이다. 또 이 강이야말로 나를
일상적인 나로부터 가장 멀리 데려다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글을
생각하며 책상에 앉아 있는 동안은 마치 애인과 보내는 시간처럼
행복하다. 그런데도 스멀스멀 올라오는 게으름과 글쓰기에 대한 회의,
그리고 내 마음 속 문자판에 수시로 뜨는 “당신, 문학적 재능 없음.”
이란 이 메시지는 어찌하나.
문학의 밑돌을 괴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인간에 대한 사랑인
것 같다. 삶의 불량스러움이나 냉소까지도 따뜻한 연민으로 감싸 안는다.
내가 문학에 끌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기에 나는 ‘쓰는 사람’
이전에 ‘보고 느끼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글을 쓰면서 가장 힘든 것은
내 안과 밖의 압력을 조절하는 일이다. 앞서 가는 물줄기는 숨이
차서 따라갈 수가 없고, 내 등 뒤로 밀려오는 물줄기는 너무 위력적이라
두렵기만 하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벌벌 기어서 갈 수 없는 일.
그저 독하게 마음을 먹는 수밖에 없는 듯하다. 불현 듯 ‘개똥벌레’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아무리 우겨 봐도 어쩔 수 없네’로 시작해서 ‘쓰라린
가슴 안고 오늘밤도 그렇게 울다 잠이 든다.’로 끝나는 그 노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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