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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舍利) / 신달자

누구나 자신의 몸에 두 개쯤의 사리를 가지고 있다 태어나 처음으로 세상을 보던 순간에서 열두 대문을 열고 다시 열두 계곡을 휘돌아 다시 일천 대문을 밀며 더 깊어지는 눈(眼) 어쩌다 발 헛디뎌 으윽 허리가 꺽일 때 어둠 속에서 더 번뜩이는 빛으로 남아 있던 눈 태우면 태워져 사라지는 사리도 있는 것이다 쨍그랑 소리 한 번 없이 사라지는 사리도 있는 것이다 너에게도 나에게도 있는 몸의 열매 그것은 사라지면서 별에 포개질 것이다 늙은 사람들의 눈을 보라 절벽에 떨어진 듯 쭈글쭈글한 주름이 싸고 있는 눈 쭈그러진 주름 안에 나무 관세음이 있다 세상사 두루 본 생의 이력으로도 그 눈은 사리가 되리 태우면 태워져 사라지면서 온 세상을 밝히는 사리도 있는 것이다

읽고 싶은 시 2014.03.21

해인으로 가는 길 / 도종환

화엄을 나섰으나 아직 해인에 이르지는 못하였다 해인으로 가는 길에 물소리 좋아 숲 아랫길로 들었더니 나뭇잎 소리 바람 소리다 그래도 신을 벗고 바람이 나뭇잎과 쌓은 중중연기 그 질긴 업을 풀었다 맺었다 하는 소리에 발을 담그고 앉아 있다 지난 몇 십 년 화엄의 마당에서 나무들과 함께 숲을 이루며 한 세월 벅차고 즐거웠으나 심신에 병이 들어 쫓기듯 해인을 찾아 간다 애초에 해인에서 출발하였으니 돌아가는 길이 낯설지는 않다 해인에서 거두어 주시어 풍랑이 가라앉고 경계에 걸리지 않아 무장무애하게 되면 다시 화엄의 숲으로 올 것이다 그땐 화엄과 해인이 지척일 것이다 아니 본래 화엄으로 휘몰아치기 직전이 해인이다 가라앉고 가라앉아 거기 미래의 나까지 바닷물에 다 비친 다음에야 해인이다 그러나 나는 해인에도 이르지..

읽고 싶은 시 2014.03.19